[데스크칼럼] 文대통령이 김여정 타깃 된 이유

2020-06-18     송병형 기자
송병형
지난 17일 김여정이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연설을 두고 쏟아낸 ‘말폭탄’은 진중권의 “의전 대통령” 발언을 아득히 뛰어넘는 독설이었다. 현 정권의 아픈 곳을 후벼 파는 문장과 표현들이 줄을 이었는데, 북한 공사 출신 태영호 의원의 말로는 전문가들의 작품이라고 한다. 펜으로 적의 심장을 찌르는 방식의 글쓰기를 배운 전문가들이 미리 준비한 섬뜩한 표현들을 김여정의 말폭탄에 담았다는 것이다. 과연 미리 준비한 듯한 흔적이 역력했다. 그동안 우리 내부에서 문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에 대해 제기된 비판의 핵심은 ‘쇼통’ ‘자화자찬’ ‘남 탓’ 등으로 정리된다. 김여정의 말폭탄을 준비한 북측 전문가들은 이런 비판들을 북한 특유의 신랄한 표현으로 바꾸어 원고지 27장 분량의 담화문에 빼곡히 담았다. “본말은 간 데 없고 책임회피를 위한 변명과 오그랑수를 범벅 해 놓은 화려한 미사여구로 일관되어 있다” “특유의 어법과 화법으로 멋쟁이 시늉을 해보느라 따라 읽는 글줄표현들을 다듬는데 품 꽤나 넣은 것 같은데 현 사태의 본질을 도대체 알고나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요사스러운 말장난으로 죄악을 가리워 버리고 눈앞에 닥친 위기나 모면하겠다는 것인데 참으로 얄팍하고 어리석은 생각이다” “연설을 뜯어보면 북남 관계가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 죄다 그 무슨 외적요인에 있는 듯이 밀어버리고 있다” 등등 모두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그러나 정작 ‘남 탓’을 하며 책임전가를 하고 있는 쪽은 북한이다. 유례없는 고강도 대북 제재 속에서 유일한 생명 줄이던 대중 무역이 코로나19로 인해 90%나 줄었다니 북한 내부사정은 말이 아닐 것이다. 지난 7일 국가 중대사를 논의하는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평양시민들의 생활보장 문제가 시급한 국가적 현안으로 논의됐을 정도면 상황이 심각한 것이다. 자칭 ‘혁명의 심장’이라는 평양은 김정은 정권의 보루나 다름없다. 선택받은 자들만이 평양시민이 될 수 있고, 생활보장 등 온갖 특혜를 누린다. 그런 평양에 대해 김정은이 “살림집 건설을 비롯한 인민생활보장과 관련한 국가적인 대책을 강하게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북한 내 경제 상황이 얼마나 악화됐을지 이로 인해 민심이 얼마나 험해졌을지 굳이 직접 보지 않아도 짐작 가능하다. 이쯤 되면 남 탓이라도 해야 정권이 유지될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을 건드리기는 겁이 났을 것이다. 당장 미국은 북한이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자 이미 성공한 저위력 전술핵폭탄의 F-15 투하 성능시험을 뒤늦게 공개하지 않았나. 5세대 스텔스 전투기인 F-35 투하시험도 진행하겠다고 했으니 감히 북한으로선 미국을 자극할 생각을 못할 것이다. 그러니 김정은은 ‘만만해’ 보이는 남쪽의 대통령에게 경제 악화의 책임을 모두 돌리려는 것이다. 그것도 수령 체면을 구길 수 없으니 여동생에게 악역을 맡겨서.  결국 문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만만하게 보였다는 게 문제다. 더욱 큰 문제는 문 대통령이 달라질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워싱턴포스트(WP)도 2018년 남북 정상 간 화려했던 만남에 대해 “북한 난민 부모 밑에서 태어나 대통령 임기 상당부분을 남북 관계 개선과 통일이라는 꿈에 매달린 한 남자의 승리의 순간이었다”며 “문 대통령이 꿈을 버릴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