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재계] 정의선 부회장, “이제는 협력시대”…신 ‘모빌리티’ 체제 구축
현대차그룹 혼자 다 하던 시대서 다방면 협력을 통한 협력 체계로 전환
정의선 부회장, 모빌리티‧자율주행‧커넥티드카서비스‧전기차 부문서 광폭 행보
2021-06-21 문수호 기자
[매일일보 문수호 기자] 현대자동차그룹이 최근 재계 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매김한 기업 간 상생협력의 롤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과거의 그룹 수직계열화 정책을 버리고 모빌리티‧자율주행‧커넥티드카서비스‧전기차 등의 분야에서 글로벌 유망 기업에 투자를 단행하며 협력 체제 구축에 나섰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은 올해 초 신년사에서 미래 성장을 위해 그룹 총투자를 연간 20조원 규모로 확대하고, 향후 5년간 총 100조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대대적 투자를 통해 올해를 미래 시장 리더십을 확보하는 원년으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제시한 ‘시장 판도를 주도하는 게임 체인저로의 도약’ 목표로 대규모 투자와 제휴 협력, 일하는 방식 혁신 등을 추진하고 있다. 정 부회장의 변화에 대한 의지는 글로벌 업체들에 대한 투자‧협업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모빌리티‧자율주행‧커넥티드카서비스‧전기차 부문에서 최근 현대차의 투자는 기술력을 갖춘 스타트업 기업으로까지 확대됐다.
이러한 변화는 과거 정몽구 회장까지 현대차그룹의 운영 방식과는 정면으로 대치된다. 철강 등 소재부터 자동차부품, 완성차조립까지 자동차 관련 모든 공정의 수직계열화를 완성했지만, 4차 산업으로의 전환은 그룹 차원이 아닌 분업과 협력의 관점에서 다가갔다. 이는 자체 개발과 함께 분산 투자로 리스크를 줄이고, 앞선 기술력 제휴를 통해 미래 산업에 대한 주도권을 가져가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정 부회장은 최근 재계에서 불고 있는 협력‧융합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대표주자다. 자동차가 많은 부분에서 미래 산업과 연관이 있다는 점도 작용했지만, 외형 중심의 그룹 경영에서 본격적인 실리 중심의 경영 방식으로 전환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성장이 둔화되면서 위기를 맞고 있다. 이미 글로벌 생산대수가 800만대에서 700만대 중반대까지 급감했으며, 국내 생산대수는 지난해 400만대가 깨지며 급격한 수요 감소를 체감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1억대에 가까운 자동차 수요가 7000만대 수준으로 감소할 전망이어서 생존을 위한 변화가 필요한 시기다.
정의선 부회장은 그룹의 수익 감소 등 어려움 속에서도 투자를 과감히 늘리고 있다. 모빌리티 부문에서 카헤일링 업체인 그랩, 올라 등에 투자했으며, 모빌리티 플랫폼 관련 미고와 카넥스트도어에 투자했다. 또 자율주행에 있어 주도권 확보를 위해 미국 앱티브와 합작법인을 만들었고, 국내 코드24에 투자를 단행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자율주행과 관련된 기업으로 메타웨이브, 옵시스, 오로라, 오토마타 등 많은 기업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커넥티드카서비스 분야에서도 이스라엘의 오토톡스와 엠디고 등에 투자를 결정했으며, 스위스의 웨이레이, 미국 사운드하운드 등에도 투자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직적 투자 기업 외에도 인텔, 바이두, 카카오아이 등의 기업과 협력 관계를 맺으며, 자동차가 아닌 다양한 이종 산업 간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
전기차 부문에서도 투자와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고성능 전기차 개발을 위해 크로아티아 기업인 리막에 투자를 결정했고, 전기차 인프라 조성을 위해 초고속 충전 네트워크 노하우를 가진 독일 아이오니티에도 투자에 나섰다.
더욱 눈여겨볼 부분은 정의선 부회장의 국내 행보다. 2025년까지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이 전기차 신모델을 쏟아낼 예정으로, 앞으로 전기차 배터리 공급 부족 현상을 염려해 국내 전기차 배터리사와 협력 관계를 조성하고 있다. 특히 이를 위해 그동안 일과 관련된 공석에서 만남이 없었던 재계 1~2위 기업의 총수가 단독 회동을 가지기도 했다.
정 부회장은 지난달 천안에 위치한 삼성연구원을 방문해 기술 개발 동향을 체크하고 이재용 부회장을 만나 협력 관계에 대해 논의를 가지다. 특히 22일에는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만나는 것으로 알려져 국내 배터리 업체와의 배터리 동맹 구축 전선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최근에는 삼성SDI, LG화학과 같은 배터리 동맹에 이어 한국타이어와도 드라이빙센터 협력을 구축하는 등 다방면에서 광범위한 협력 체제 구축에 나서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정의선 부회장의 광폭 행보는 최근 재계 내 협력과 산업간 융합이라는 트렌드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제는 한 기업이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 기업 간 협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