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꿈꾸다 ‘봉’으로 전락한 연예인 누구?

실체 드러낸 연예인 ‘노예계약’…인권침해 조항 ‘수두룩’

2009-06-12     류세나 기자

공정위, 두달에 걸쳐 중소형 연예기획사 20곳 실태조사 벌여
상시 위치보고는 물론 허락 없인 은퇴도, 해외여행도 못해
연예인 230명 전원 불공정 약관 포함…계약서 없는 스타도

[매일일보=류세나 기자] 연예인 지망생이나 무명 연예인이 ‘스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연예기획사의 도움과 지도관리가 필수적이다. 몇몇 연예인들이 종종 TV를 통해 “연예인이 되기 위해 기획사에서 주최하는 오디션을 수백여 차례 봤었다”고 회고하는 것만 봐도 연예인과 기획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이 잘 드러난다. 이 같은 관계 속에서도 특히 신인 또는 무명 연예인들은 스타급 연예인들보다 상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으로 기획사와 계약을 맺게 되는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노예계약’을 방불케 한다는 게 연예계 안팎의 지적이다.

그동안 공공연한 비밀로 치부돼왔던 연예기획사와 연예인 간의 ‘불평등한’ 관계는 지난 3월 고 장자연씨의 자살사건을 계기로 수면 위로 드러났다. 당시 장씨가 유서를 통해 “기획사에 의해 성상납을 강요당해왔다”고 언급하자 이후 몇몇 연예인들은 “연예계 내부에 이 같은 ‘관행’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장씨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 같은 내부고발에도 불구하고 연예기획사들의 불공정한 전속계약, 이른바 ‘노예계약’의 관행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생활 침해 중소기획사가 더 심해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4월부터 5월말까지 국내 20개 중소형 연예기획사에 소속된 연예인 230명의 전속계약서를 조사한 결과 19개 업체에서 8개 유형 91개의 불공정 계약조항이 적발됐다고 9일 밝혔다. 이는 지난해 하반기 공정위가 10개 대형 연예기획사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여 총 10개의 유형에서 46개의 불공정 조항을 찾아냈던 때보다 심각한 수치다. 대형 기획사보다 중소형 기획사의 불공정 행태가 심각하다는 것. 특히 230명의 연예인 중 한 한명도 독소조항이 포함되지 않은 계약을 체결한 사람이 없었다는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은 여실히 드러난다.세부내용을 살펴보면 기획사는 연예인과의 전속계약 체결 후 소속 연예인의 방송활동은 물론 사생활에 대한 조정권까지 갖게 된다. 연예인은 기획사에 자신의 위치를 항상 통보해야하고, 해외출국시 사전승인을 받아야한다. 또 기획사의 홍보광고 등에 무상출연하는 의무를 지게끔 하고, 기획사 혹은 계열사가 주관하는 행사에도 횟수에 상관없이 모두 무상 출연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게다가 연예인 개인에 대한 관리 및 모든 계약 통제조정권을 기획사에 일임하고 기획사의 승인 통제하에서만 연예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심지어 기획사의 허락 없이 연예활동을 중지하거나 은퇴할 수 없다는 조항을 넣은 곳이 있는가 하면 계약을 해지하면 같은 업종이나 유사 연예활동을 중단해야 한다는 내용까지 포함된 곳도 있었다.또 연예인의 사전 동의 없이 제3자에게 계약당사자의 지위를 양도할 수다는 조항이 포함된 곳도 있었으며 연예인이 임의로 계약을 해지할 경우, 통보한 날부터 발생하는 모든 수익을 기획사가 갖는다는 조항을 넣은 기획사도 더러 있었다.공정위 조사결과 불공정계약이 발견된 19곳의 기획사 중에는 빅뱅, 2NE1, 구혜선 등이 소속된 YG엔터테인먼트와 신동엽, 유재석 등이 소속된 DY엔터테인먼트, 엄정화, 손예진 등이 소속된 바른손 엔터테인먼트 등도 포함돼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20개 업체 중 한지민, 채시라 등이 소속돼 있는 아바엔터테인먼트에이전시는 서면계약서 없이 구두로만 계약을 맺어 불공정 여부를 판단할 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공정위는 이들 연예기획사들에게 오는 7월 20일까지 불공정계약을 자진 시정하거나 표준약관을 도입토록 했다. 표준약관은 지난 4월 한국연예인제작자협회 등이 심사를 청구해 현재 공정위가 심의 중이며, 이달 안에 제정될 예정이다.

장자연 소속사 왜 조사대상서 빠졌나

한편 이번 조사대상에 고 장자연씨가 소속됐던 더컨텐츠엔터테인먼트가 빠져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해 말 10개 대형기획사의 연예계약서를 1차 조사할 당시 이 회사는 ‘대형’이 아닌 ‘중소형’으로 분류돼 조사대상에서 제외돼 이번 서면 실태조사에는 포함될 것으로 예상됐었다. 이와 관련 공정위 관계자는 “2차 조사 당시 검찰이 해당 업체를 수사중이었는데 공정위까지 나서 조사하는 것은 기획사에게 과중한 부담이 될 수 있다”면서 “고 장자연씨 문제는 술자리 접대 강요, 협박 등의 형법상 문제이고 이번 조사는 공정거래 차원의 계약조항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