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뉴딜 ‘이중성’] 기업 부담만 가중되는 정책…지원보단 압박 많아
한국판 뉴딜 핵심은 기업 기술…단시간 성과 욕심에 ‘속도’만 강조
디지털 강조, ‘데이터센터’ 설립 난항…이통사에 ‘5G 확장’ 요구만
환경 강조, ‘그린 뉴딜’ 특정 분야 편중… ‘새로운 규제’ 에 노심초사
2021-07-29 정두용 기자
[매일일보 정두용 기자] 문재인 정부가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하겠다며 야심차게 발표한 ‘한국판 뉴딜’ 정책에 산업계의 시각이 엇갈린다. 정부는 2025년까지 이 정책에 약 160조원을 투입, 기술 기반 산업을 활성화 시키겠다고 나섰다.
산업계에선 정부의 방향성에 공감하며 새로운 성장 원동력이 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그러나 지원책이 일정 분야에 편중돼 있고, 성과를 단시간에 보여주기 위해 기업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정부가 핵심 과제로 꼽은 분야에서도 산업 발전에 뒤처지는 규제도 산적해 ‘이중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의 한국판 뉴딜을 통해 강조한 분야 곳곳에서 기업들의 고충은 여전하다. 디지털 인프라 구축에 난항을 겪고 있고, 원자력·화학 등 전통산업에선 새로운 규제 등장 가능성에 대한 우려로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한국판 뉴딜은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을 중심축으로 기획됐다. 핵심 분야로 인공지능(AI)·빅데이터·5G·블록체인·신재생에너지·배터리 등이 꼽힌다. 모두 기업 기술을 기반으로 산업이 형성돼 있다. 이 때문에 한국판 뉴딜을 두고 시장에서 ‘결국 핵심은 기업’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디지털 뉴딜을 이끌 정보통신기술(ICT)분야 기업 관계자들은 “정부 기조가 이중적이다”라고 입을 모았다. 정부 방향성과 산업 현실에 괴리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클라우드 전환과 5G 인프라 구축 부문에서 이 같은 목소리가 많았다.
정부는 행정·공공기관 클라우드 전환율을 올해 17%에서 2025년 100%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국내 클라우드 시장은 해외 기업이 독주하고 있는 구조다. 업계에선 국내 클라우드 시장을 현재 아마존웹서비스(AWS)·마이크로소프트(MS) 등 외국계 기업이 70% 이상 점유하고 있다고 본다.
클라우드의 핵심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하는 데 있다. 한국판 뉴딜 정책의 10대 주요 과제 중 △데이터 댐 △AI 정부 △디지털 트윈 △SOC 디지털화 등은 클라우드 기술 없인 추진이 불가능하다. 클라우드에서 처리되는 대량의 데이터를 다루는 공간을 ‘데이터센터(IDC)’라 부른다. 이 시설 없인 클라우드 구현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다. AWS·MS·구글 등 선도 기업들은 2010년대 초부터 국내에 공격적으로 데이터센터를 구축해 왔다. 국내 기업 중에선 네이버·삼성SDS·NHN·KT 등이 클라우드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번번이 데이터센터 설립 반대에 부딪혀왔다.
네이버는 용인시에 데이터센터 구축을 2년간 추진해왔지만, 결국 첫 삽도 뜨지 못하고 지난해 무산됐다. 주민들이 열섬·전자파 등 환경적 문제에 대한 우려를 표출했기 때문이다. 네이버는 당시 “이미 운영 중인 춘천 데이터센터의 전자파 수치를 측정한 결과 일반 가정집보다 낮았다”고 해명했지만 주민 반대(95%)를 돌리지 못했다. 네이버의 두 번째 데이터센터는 우여곡절 끝에 세종시에 들어서게 됐다. 이 과정에서 상당한 시간이 소요돼 사업 확대 시점을 놓쳤다.
이 같은 현상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NHN은 HDC현대산업개발과 손잡고 김해에 약 5000억원을 투자해 판교에 이은 두 번째 데이터센터 설립(2022년 완공 목표)을 추진하고 있다. 김해양산환경운동연합은 최근 김해시에 열섬 현상·전자파 방출·일자리 창출 실효성 부족 등을 이유로 이 시설 설립을 반대하고 나섰다.
NHN은 “데이터센터 전력선은 지중 매립 방식으로 구성돼 전자파에 의한 영향은 극히 낮다”며 “운영 시스템의 적정온도 유지가 매우 중요한 시설로, 만약 열섬현상이 발생할 경우 데이터센터 운영에 치명적 영향을 받아 시설 자체를 운영할 수 없다”고 해명했다. 또 “연차 계획에 따라 지역 인재로 고용할 예정으로 500여명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해시가 이런 분쟁에 소통 하겠다고 나섰지만 정부 차원의 지원책이나 대화 움직임은 없어 ‘제2의 용인’ 사태가 될 것이란 업계의 우려가 나온다.
디지털 뉴딜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5G 인프라 구축에도 정부 지원이 부족해 기업 부담감이 가중되고 있다. 이동통신 3사는 정부에 제출한 주파수 활용계획에 따라 연내 각각 1만5000개씩 28㎓ 기지국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고, 5G 단독모드(SA) 상용화도 서둘러야한다. 정부도 5G가 디지털 뉴딜의 핵심 분야인 만큼 인프라 확장에 은근히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게 여러 업계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그러나 정부의 인프라 확장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이 없는데다 △약 3조원의 주파수 재배정 비용 △보편 요금제 검토 △역대급 단통법 과징금(512억) 부과 등으로 ‘5G 확장’ 정책과 상반된 모습을 보여 왔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코로나로 기업 경영이 악화되고 있어 5G 투자금 마련에 고충을 겪고 있다”며 “현금이 메말라가고 있는데 지불할 비용은 갈수록 많아져 정부가 요구하는 ‘5G 확장’ 속도를 따라가기 힘들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