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미·중 갈등] 브레이크 없는 미·중 갈등에 산업계 ‘속앓이’

미·중 갈등, 11월 대선 이후에도 지속…무역갈등에서 기술·체제·이념 갈등으로 확대 한국 중국 수출의존도 및 중간재 수출 많아…반도체 등 GVC 변화에 전략적 대응해야

2021-08-09     문수호 기자
국내외
[매일일보 문수호 기자] 스트롱맨들의 시대다. 최근 전세계 각국 정상들이 자국 이기주의를 내세우면서 자유무역주의와 세계화의 모범국가로 꼽히는 한국이 타격을 받고 있다. 이미 지난해 미·중 갈등으로 인한 글로벌 교역 위축의 영향을 받았고,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병으로 전세계 글로벌 가치사슬(GVC)에 변화가 생기며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고 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미·중 갈등은 하반기에 더욱 고조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화웨이 문제로 시작된 미·중 무역갈등은 기술 패권전쟁으로 이어지는 양상을 보였다. 올해도 홍콩보안법과 틱톡 등의 문제로 갈등 양상이 확대되고 있어 11월 미국 대선 결과와 무관하게 미·중 갈등은 장기화 국면이 이어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미·중 갈등이 단순히 트럼프 대통령 때문만이 아니라 미국을 위협하는 초강국으로 성장한 중국과의 헤게모니 경쟁을 잠재적 원인으로 지목한다. 중국은 제조업과 ICT 기술을 결합해 생산공정의 혁신을 촉진하고 IT, 우주항공, 신에너지, 로봇, 신소재, 바이오의약 등 다양한 부문에서 미국 주도의 경제 질서에 도전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의 환율조작·불법보조·지식재산권 절취 등 불공정한 무역 관행을 지적하며, 중국의 신산업 부문에 관세 폭탄을 집중하고 있는 것도 중국에 4차 산업 시대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도가 드러난다.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를 끝내겠다고 하면서도 경제·안보·인권 등 모든 면에서 중국 정부를 일관되게 압박할 것으로 밝힌 만큼 대선 이후에도 미국의 중국 때리기는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과거 경쟁국의 국내총생산(GDP)가 미국의 40%에 달하는 시점에서 직접적인 견제와 압력을 가해왔다. 1970년대 소련과 1980년대 일본에 대한 견제가 대표적이다. 중국은 현재 미국의 GDP의 60%를 넘어섰다. 미국으로서는 더 이상 지체하면 중국을 견제할 기회가 사라진다.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전략으로 호주-일본-베트남-인도를 잇는 중국 봉쇄 전략을 펼치고 있으며, 한국에 반중 경제블록인 경제번영네트워크(EPN) 참여를 권하고 있다. 중국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유럽연합(EU)를 넘어선 15개국(한국 포함)이 참여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최종 타결을 앞두고 있다. RCEP는 인구 34억명, 무역규모 10조1310억달러), 명목GDP 19조7640만달러에 이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블록이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의 수출 비중이 40%에 가까운 만큼 G2 양국의 경쟁에서 입는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이미 지난 2016년 고고도방어미사일(THAAD) 배치 이후 중국의 ‘한한령’에 화장품·엔터테인먼트, 미디어(콘텐츠)뿐만 아니라 자동차 등의 제조업도 상당한 타격을 받은 사례가 있다. 특히 한국은 중국 수출의 80% 정도가 중간재로, 미국의 중국 수입규제가 확대될 경우 우리나라의 피해도 커지게 된다. 전세계 중간재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5% 수준에 달한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원은 관세 인상으로 인해 중국의 대미 수출이 감소할 경우 한국의 총수출이 0.02% 감소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코로나19 이후 커지는 전세계 공급망 체계 변화 역시 주목할 부분이다. 자국 산업 보호와 리쇼어링 정책은 중간재를 생산하고 있는 한국의 경우 상당한 타격이 있을 수 있다. WTO는 코로나19 사태로 국제 교역량이 세계대전 이후 최대 감소폭을 보일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미·중 갈등이 심화됨에 따라 반도체 부문의 변화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미·중 갈등이 해소되면서 중국 정부의 보조금 지급이라는 불공정한 관행이 폐지될 경우 한국 반도체의 수혜가 예상되지만, 현재로서는 불이익이 더 클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전체 반도체 수출 중 중국의 비중은 70% 수준에 달한다. 반도체는 우리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만큼 중국 경제가 흔들리면 한국경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다. 특히 미·중 갈등을 계기로 시작된 중국의 반도체 굴기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중국은 반도체 굴기에 속도를 내기 위해 자국 반도체 기업에 10년간 법인세를 면제하는 파격 혜택을 제공하기로 했다. 중국 국무원은 지난 4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반도체 및 소프트웨어(SW) 산업 발전 정책’을 발표했다. 중국 반도체 업계 1위인 SMIC와 2위 화훙이 정책 수혜를 입게 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중국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초격차 전략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미·중 양국의 대립은 경제·통상·기술 분야를 넘어 전략 및 패권경쟁으로 확산되고 있어 세계 경제 질서의 불확실성은 극대화될 것”이라며, “동맹국인 미국과 경제의존도가 높은 중국 사이에서 무역에 명운을 걸어야 하는 한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본원칙하에 고도의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