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업종 '덫'에 걸린 은행들

기존 부채에 신규 지원 자금 갈수록 늘어 건전성 우려

2013-05-19     강준호 기자

[매일일보]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떠오른 건설·조선·해운 등 3대 취약업종에 대한 은행권 대출 규모가 82조원에 달하면서 은행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기존 부채는 물론 신규 자금지원 등으로 채권은행들이 부실업종에 지원해야 할 자금은 커지고 있는 반면, 경기 악화로 대출액을 회수할 가능성은 희박해지고 있어 재무건전성에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실업종들은 벌어들인 돈으로 인건비조차 충당할 수 없어 외부 차입에 의존해야 한다. 그런데 재무구조가 악화한 기업은 회사채 발행마저 힘들어서 돈을 빌릴 곳은 은행밖에 없게 된다.

결국, 기업의 회생을 위해 은행이 부담해야 할 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워크아웃(기업 재무구조 개선)을 추진 중인 쌍용건설의 금융권 부채는 총 7000억원 가량이다. 그런데 쌍용건설의 정상화를 위해 부담해야 할 자금은 무려 1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회사 운영자금과 협력사 납품대금 등으로 필요한 신규 자금이 4450억원, 해외 사업의 지급 보증액이 2400억원, 출자전환액이 2800억원 가량이다.

기존 부채보다 은행들이 새로 부담해야 할 돈이 더 많은, 한마디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지난 2010년 4월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맺은 성동조선해양도 채권은행들이 이 회사의 회생을 위해 새로 대출해 준 돈만 2조원에 달한다.

법정관리 위기에 몰렸던 STX그룹은 쌍용건설이나 성동조선해양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은행들의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올해 3월말 기준 STX그룹에 대한 금융권의 여신 총액은 13조1910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채권은행들이 지원하거나 지원키로 한 금액만 1조원을 넘는다. STX조선 6000억원, STX 3000억원, STX중공업·엔진 1900억원 등이다.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맺은 지 한 달도 못 돼 1조원을 넘는 돈이 들어갔다면 올 한 해로는 수조원의 돈이 필요할 수 있다. 최소 부담액이 3조원을 넘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기존 부채보다 신규로 부담해야 할 돈이 더 크다면 채권은행 입장에서는 해당 기업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청산 절차를 밟고 관련 대출은 손실로 처리하면 된다.

하지만 건설이나 조선업종은 이마저도 쉬운 일은 아니다. 지급보증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대규모 공사나 선박 건조는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의 자금이 투입되기 때문에, 발주처에서 대금을 줄 때마다 금융기관의 지급보증을 요구한다.

건설사나 조선사가 공사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거나 선박을 건조하지 못하면, 금융기관이 대신 공사대금 등을 발주처에 지급해야 한다는 뜻이다.

STX그룹의 금융기관 보증액은 7조1000억원으로 대출액 5조3000억원보다 훨씬 많다. 대출액을 포기하고 STX그룹을 청산하더라도, 그보다 더 많은 돈을 쏟아 부어야 한다는 얘기다.

쌍용건설도 발주처에서 받은 선수금 등이 1조1000억원, 프로젝트파이낸싱(PF) 보증 규모가 3000억원 이상이다. 쌍용건설이 회생하지 못하면 이는 고스란히 채권단의 손실로 돌아온다.

결국 수천억원의 추가 지원을 하더라도 쌍용건설을 회생시키는 것 외에 대안이 없는 셈이다.

한마디로 건설이나 조선업종은 채권은행의 발목을 단단히 잡은 `덫'과 같은 존재가 됐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