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적용 예외 ·곳곳에 빈틈...'있으나마나' 재정준칙 비판 거세

사실상 차기 정권에 재정악화 떠넘기기 성격 적용예외·고무줄 기준에 법적 구속력도 낮아

2020-10-05     박지민 기자
홍남기
[매일일보 박지민 기자] 정부가 5일 발표한 한국형 재정준칙은 2025회계연도부터 도입될 예정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상한선을 60%로 설정했다. 이는 재정준칙을 도입한 국가들 상당수와 동일한 상한선이다. 그러나 재정건전성 문제를 악화시킨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는 적용조차 하지 않는데다 곳곳에 허점이 많아 사실상 ‘있으나마나’ 준칙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조건 중 하나만 맞추면 충족? 한국형 재정준칙의 골자는 국가채무비율을 GDP의 60% 이내에서,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비율을 -3% 선에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해당 연도 국가채무 비율을 60%로 나눈 값과 통합재정수지 비율을 -3%로 나눈 값을 곱했을 때 1보다 작거나 같으면 재정준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한도 계산식을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국가채무비율이 60%선을 훌쩍 넘는다고 하더라도 통합재정수지가 -3% 이내라면 재정준칙을 어기지 않게 된다. 역으로 국가채무비율이 60% 아래라면 통합재정수지비율이 기준선을 넘어도 재정준칙을 어기지 않게 된다. 정부는 “하나의 지표가 기준치를 초과하더라도 다른 지표가 기준치를 하회하면 충족이 가능하도록 상호 보완적으로 설계했다”고 설명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기준선 제시가 무의미해지는 방식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제위기 시에는 준칙 면제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인한 경제위기 시에 준칙 적용이 면제된다는 점도 문제다. 사실상 정부 판단에 따라 ‘고무줄’처럼 적용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정부는 전쟁, 대규모 재해, 글로벌 경제위기 시 재정준칙에 따른 한도 적용을 받지 않도록 했으며, 위기가 지나서도 면제 규정을 단계적으로 적용하도록 했다. 정부는 이에 더해 잠재 GDP, 고용·생산지표 등을 근거로 경기 둔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판단될 경우 통합재정수지 기준을 -3%에서 -4%로 -1%포인트 완화해 최대 3년 동안 적용하기로 했다. 정부 운신의 폭이 대폭 늘어나는 셈이다. ▮차기정부에 재정위기 떠넘기기? 재정준칙 도입 필요성은 문재인 정부의 거듭된 확장재정으로 인해 제기됐다. 문재인 정부 이전까지 역대 정권에서는 암묵적으로 국가채무비율 40%를 마지노선을 삼아 관리해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재정지출이 급격히 확대됐다. 특히 올해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면서 4차 추가경정예산까지 편성된 결과, 국가채무는 846조9000억 원으로 급격히 늘어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43.9%에 달한 상태다. 문재인 정부는 한국판 뉴딜 프로젝트 등을 위해 확장재정을 더욱 강화할 방침이라 향후 재정건전성은 더욱 악화될 전망. 정부 공식 전망치에 따르면 2024년 국가채무비율은 58.6%로 예상된다.  하지만 정작 문재인 정부는 이번 재정준칙 적용 대상이 아니다. 정부는 2025년 회계연도부터 준칙을 적용해 5년마다 재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문재인 정부가 급격히 악화시킨 재정건전성을 다음 정부가 떠맡게 되는 셈이다. ▮시행령에 좌우, 법적 구속력도 약해 마지막으로 재정준칙 산식 등 세부수치를 법이 아닌 정부 시행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어 법적 구속력이 약하다는 문제도 있다. 재정준칙 도입 근거만 국가재정법에 규정하고, 핵심은 시행령에서 정하도록 하고 있어 사실상 정부에 대한 구속력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재정준칙을 도입하고 있는 상당수 국가들은 헌법이나 법률을 통해 법적 구속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재정건전화법안·국가재정법 일부 개정법률안 검토 보고’에 따르면, 재정준칙을 가진 159개국 중에서 법률에 근거를 두고 있는 국가는 103개국, 헌법에 근거를 두고 있는 국가는 14개국으로, 양자가 전체의 73.6%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