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금강산과 서해 참변, 진정으로 달라진 것
해양수산부 산하 서해어업지도관리단 소속 8급 공무원 이모 씨가 서해상 북측 해역에서 끔찍하게 살해된 지 사흘만인 지난달 25일 북한이 노동당 대남공작조직 통일전선부 명의로 첫 입장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사건 발생 이후 첫 입장표명을 한 지 하루만이다. 대통령 입장은 단 3줄로, 이 가운데 북한에 대한 요구는 “책임 있는 답변과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한 줄이다. 이에 대해 통전부는 한 장짜리 통지문을 보냈다. 골자는 ①신분확인 요구를 거부한 불법 침입자가 도주하려 하자 규정에 따라 총살하고 부유물 역시 규정에 따라 소각하는 불상사가 발생해 미안하며 ②‘만행’이라는 표현은 일방적인 억측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북한식의 틀에 박힌 답변이다. 12년 전 발생한 박왕자 씨 피격사건 때와 비교해보자. 2008년 7월 11일 새벽 금강산에서 참변이 발생한 뒤 줄곧 발뺌하던 북한은 2010년 2월 8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남북 회담에서도 △진상규명 △재발방지 △신변안전보장 등 우리 측의 3대 선제 요구를 거부하고는 3월 19일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을 통해 장문의 ‘상보’를 발표했다. 이 보고에는 금강산 참변에 대한 북한의 입장이 망라돼 있다. 정리하자면 ③군사통제구역 불법 침입자가 경계근무중인 초병의 단속과 경고를 무시하고 달아나면서 발생한 불상사로, 철두철미 군사규정과 규범에 따른 정당한 것이며 ④‘과잉대응’이니 ‘무방비상태의 관광객에게 총격을 가했다’느니 하는 것은 ‘도적개 코를 세우는 격의 황당무계하고도 파렴치한 궤변’이라는 것이다. 통전부의 서해 참변 통지문과 판박이다.
물론 달라진 것도 있다. 통전부 통지문에 담긴 김정은의 유감 표명이다. “김정은 동지는 가뜩이나 악성비루스 병마의 위협으로 신고하고 있는 남녘 동포들에게 도움은커녕 우리 측 수역에서 뜻밖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여 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 준 데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뜻을 전하라고 하시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대통령은 “각별한 의미로 받아들인다. 북한의 최고 지도자로서 곧바로 직접 사과한 것은 사상 처음 있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극찬했다. 정부나 여권의 평가도 다르지 않다. 북한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특히 친문 지지층에서는 “보수정권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대통령의 업적을 찬양하기도 했다.
그런데 달라진 게 하나 더 있다. 금강산 참변을 두고 북한은 ‘여자 혼자 이른 새벽 군사통제구역을 깊숙이 침범한 자체가 의문’이라고 했다. 불순한 의도가 의심된다는 것이다. ‘징벌했다’는 표현까지 있으니 사실상 피해자가 죽음을 자초했다는 주장이나 다름없다. 북한은 또 진상규명 등 요구에 대해서는 ‘남북관계를 파국으로 몰아가면서 민족 분열과 대결의 장벽을 더 높이 쌓기 위한 보수 세력의 생트집’이라고 했다. 그런데 서해 참변에서는 우리 내부에서 ‘월북하려다 죽은 게 무슨 대수냐’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폄훼하고 정부를 공격하기 위한 보수 세력의 정치공세’라는 말이 나온다. 북한이 하던 짓을 우리 내부에서 대신 하는 격이다.
어쩌면 김정은의 사과 아닌 사과보다는 우리 내부 일각의 윤리적 파탄이야말로 지난 12년 사이 달라진 진정한 변화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