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경제사령탑이 전세난민 자초하는 나라

2021-10-15     송병형 기자
송병형
세간의 입길에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주거 문제가 오르내리고 있다. 정책 책임자가 정작 정책의 피해자가 된 사연부터 흥미로운데 그냥 피해자도 아닌 정책의 덫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는 처지가 됐다니 해외토픽감이다. 2주택자였던 홍 부총리는 정부 내 다주택자 청산 방침에 따라 세종시 주상복합 아파트 분양권을 처분하려 했지만 세종시가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면서 분양권 전매가 막혔다. 그래서 30년 삶의 터전이었던 경기 의왕 아파트를 팔아야했다. 그런데 전셋값 폭등으로 이사할 집을 찾지 못한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면서 매수자의 대출이 막혀 잔금을 치르지 못하게 됐단다. 꼼짝없이 다주택자 멍에를 계속 짊어져야할 처지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현재 살고 있는 서울 마포 아파트에서는 내년 1월 쫓겨날 판이다. 집 주인이 들어와 살겠다고 해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됐다고 한다. 석 달 내 새 전세집을 구해야 하는데 전세대란이 갈수록 태산이니 난감한 심정일 것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옹호해야 하고, 실제 앞장서 옹호해 온 그의 입에서 결국 “신규로 전세를 구하시는 분들의 어려움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는 말이 나오고 말았다. 하지만 세간의 민심은 싸늘하다. 어느 온라인 부동산카페에서는 홍 부총리 부부의 사진을 올려놓고 “마포구 집주인 여러분, 홍남기 부부 얼굴 봐두세요. 전세 계약하러 오면 잘 좀 해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고 한다. 홍 부총리에게 전세대란을 직접 체험하게 만들자는 조롱이다. 또 다른 카페에서는 아예 “월세로 이사해서 모범을 보이시라”는 글이 올라왔다. 그래야 ‘월세에 붙는 부가세 10%는 물론이고 임대소득에 원천징수 때리고 덤으로 건강보험료까지 때리는’ 일타쌍피의 부동산 징세에 고통받는 서민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란 주장이다. 세간의 민심이 이러니 야당이 한 마디 할 기회를 놓칠 리 없다. 국민의힘 김종인 위원장은 “경제부총리가 전세대란을 해소하기 위해서 여러 조치를 하지만 본인 스스로가 전세대란의 피해자가 되는 모습을 보였다”며 “웃지 못 할 현상”이라고 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졸속으로 무리하게 밀어붙인 주택임대차보호법의 복수가 경제수장을 겨냥하고 있다. 도끼로 제 발등 찍는다는 말이 어울린다”며 “웃을 수밖에 없는 사정”이라고 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혼돈의 부동산 트라우마에서 헤어나지 못한 문재인 정부는 다주택자와 갭투자 관행을 부동산 적폐로 점찍고 각종 대책을 쏟아냈다. 그리고 적폐청산 드라이브를 걸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내로남불 논란을 의식해 정부 내 다주택자 청산에 나섰다. 18년 전 ‘선거에서 재미 좀 보느라’ 행정수도 세종시를 만든다고 두 집 살림을 강요받은 관료들은 순식간에 적폐 취급을 당했다. 힘 있는 여당 의원들이야 다주택자라도 버틸 수 있겠으나 관료들은 복지부동(伏地不動) 말고 달리 묘수가 있겠나. 서슬이 시퍼런 촛불정부라 ‘부동’은 통하질 않으니 결국 ‘복지’만 남았다. 그런데 정작 자신들이 만든 정책의 덫에 걸려 ‘복지’조차 쉽지 않게 됐다. 기가 찰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