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기연장·이자유예 뇌관…은행권 건전성 위기 온다

"부실인식 이연일 뿐 내년 리스크 불거질 것" 4대은행 위험가중자산도 작년말 대비 10% ↑

2021-10-20     이광표 기자
코로나19
[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불가피하게 시행된 금융지원 조치의 영향으로 내년도 은행들의 건전성과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은행들은 대손충당금을 선제적으로 쌓고 있지만, 실물경제의 회복속도가 느려 이연된 부실이 터질 경우 내년도 금융시장의 불안이 높아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최근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발간한 '2021년 금융산업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내년 은행 건전성은 정부와 은행의 금융지원 확대로 대출 총량이 증가하는 분모효과와 함께 대출만기연장 및 이자상환유예 등으로 부실인식이 이연되는 현상이 나타날 전망이다. 연체율 및 부실채권비율 등이 하락하며 개선되는 추세처럼 보일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은행들은 금융당국의 은행권 자본건전성 강화 유도로 선제적으로 대손충당금을 적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중은행이 51조3000억원, 17만8000건의 대출만기 연장을 했고 391억원, 3500건의 이자상환 유예를 했다. 정책금융기관과 제2금융권까지 합치면 대출만기 연장은 75조8000억원(24만6000건), 이자상환유예는 1075억원(9400건)에 달한다. 실제로 부실인식 이연 효과가 발생, 은행권의 원화대출 연체율 및 부실채권비율은 하락 중이다. 올해 2분기 말 기준 원화대출 연체율은 0.33%로 지난해 4분기 0.48% 보다 하락했다. 부실채권비율 올해 2분기 말 0.71%로 지난해 4분기 0.77% 보다 내려갔다. 하지만 코로나19 영향으로 한계기업 비중이 20%를 상회할 것으로 전망되는 등 은행 건전성 악화 요인들이 널려있다. 연구소는 한계기업의 여신 규모는 2018년 105조원, 2019년 116억원에서 2020년 176억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작년 대비 약 52%가 증가할 것이란 분석이다. 

또 코로나19 이후 자영업 대출 리스크도 확대 우려가 제기된다. 자영업 대출은 코로나 사태 이후 정책자금 영향으로 증가세를 지속하는 가운데 내수 업종에 집중한 취약한 사업구조, 차주 고령화 등으로 향후 충격 지속 시 부실이 확대될 우려가 있다. 
한편 부동산 대출 규제 등 정부의 각종 정책 실패와 코로나19 사태가 맞물리면서 주요 시중은행의 위험가중자산도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자기자본 확충 속도에 비해 위험가중자산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면서 은행들의 자본 여력 관리에 비상이 걸린 모습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지난 6월 말 기준 위험가중자산은 772조1903억원으로 작년 말(700조1680억원) 대비 10.28%(72조223억원) 증가했다. 위험가중자산은 금융회사가 빌려준 돈을 위험 정도에 따라 가중치를 줘 평가한 자산으로, 대출금이나 미수금, 유가증권, 예치금 등 각 자산의 위험 정보를 반영해 은행의 실질적인 리스크를 가늠해볼 수 있는 수치다. 같은 기간 이들 은행의 자기자본은 110조9275억원에서 115조7950억원으로 4.38%(4조8675억원) 늘어났다는 점을 감안하면 위험가중자산의 증가세가 더 가파르다. 이처럼 은행들의 자본 여력이 악화된 이유는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 자산이 빠르게 불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 여파로 경제적 여건이 나빠지면서 개인부터 기업까지 은행의 대출 수요가 확대됐다. 또한 정부의 부동산 대책 부작용으로 집값이 상승하자 불안감이 커진 무주택자들이 공격적 매수에 나서는 이른바 ‘패닉바잉(공황구매)’과 ‘영끌(영혼까지 대출을 끌어모으다)’ 현상이 나타난 점도 대출 증가세를 부추겼다. 실제 한국은행이 지난 13일 발표한 ‘2020년 9월 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9월 말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957조9000억원으로 8월 말(948조2000억원)보다 9조6000억원 증가했다. 이는 지난 2004년 통계 속보를 작성한 이래 두 번째로 큰 증가액이다. 지난 8월 전달 대비 11조7000억원 증가하며 3월(9조6000억원) 이후 5개월 만에 역대 최대 증가액을 기록한 데 이은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정부 정책에 따라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을 계속 하는 데다 생활자금이 부족한 중·저신용자들의 대출 수요도 여전해 당분간 은행들의 건전성 악화를 막을 수 없어서다. 여기에다 정부의 대출 만기연장과 이자상환 유예 조치로 잠재적 부실이 누적되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출 만기연장과 이자상환 유예 조치와 은행들의 자본확충 노력으로 지금은 충분한 자본 여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대출 수요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자상환 유예 등의 조치가 끝나면 취약차주를 중심으로 대출 부실이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