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COVID-19가 일으키는 병이 전 세계적으로 문제다. 문제의 원인과병원체가 창궐하기 위해 구사하는 전략을 알아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많은 전염병 사례가 있고 COVID-19도 그 중 하나이기에 역사를 되짚어 현재의 과학 지식에서 분석하는 것이 손자의 "知彼挚友 百戰不殆"를 구현하는 길이다.
과거의 전염병 때문에 역사가 바뀐 대표적인 예로는 중세 말 근대 초 14세기 유럽 인구의 1/3을 줄인 흑사병을 들 수 있다. 엄밀히 말해 흑사병은 여러 가지 사회적 요인과 더불어 유럽을 중세에서 근대로 바꾼 원인 중 하나다. 부족해진 노동력과 때마침 일어난, 간빙기 기온 저하로 일어난 농업 생산력 약화는 중세를 대표하는 장원의 몰락과 도시 국가 발달, 화폐 경제 시대로의 진입을 이끌었다. 14세기 흑사병은 8년의 초기 확산 기간과 향후 간헐적인 대량 전파를 통해 역사 뿐 아니라 인간 유전체 변화를 초래하였고, 그 흔적은 지금도 유럽 인종들에게 유전되고 있다.
반면 흑사병의 원래 고향인 중국 서남부와 중앙아시아, 그리고 전염 경로의 한 가운데에 있었으며 당시 물류 이동의 중심 축 중 하나였던 이슬람 세계에서는 흑사병이 역사를 바꿀 정도로 번지지 않았으며 일어나더라도 한 마을의 풍토병 수준에서 그쳤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런 극적인 차이를 농업 시스템의 차이, 전염병을 대한 종교적·사회적 태도와 방법의 차이, 그리고 위생적 환경 유지 여부에서 찾는다. 면역 체계를 공격해서 사람을 살아 있는 영양 덩어리로 만들고 결과 평소에는 문제가 되지 않던 잡균들의 공격으로 인해 죽음으로 이르게 하는 HIV 또한 고향인 아프리카에서는 풍토병 정도의병이었다.
그렇다면 흑사병이나 HIV는 왜 고향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다가 전 세계 사람들을 공격하는 전염병의 원인이 되었는지 파악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토착 병원체나 큰 문제가 되지 않던 병원체가 전 세계적으로 퍼지려면 자신이 기생하던 원래 숙주와 비슷하거나, 동일한 육체 조건을 가지고 있어 자신이 증식할 수 있지만 자신의 침입을 막는 면역 체계는 없는 대상, 그리고 이 감염 대상과의 접촉이 필요하다.
흑사병의 원래 고향인 중앙아시아에서는 사람들이 직접· 간접적으로 야생 동물과 가축, 그리고 소수의 가족을 통해 매우 오랜 기간 동안 흑사병 병원체와 접촉하고 있었을 것이다. 흑사병은 맨 처음에는 소수의 사람을 죽일 수 있었겠지만, 피해자가 나와 봤자 인적 접촉이 드물고 인구 밀도가 희박한 생활환경은 감염자와의 접촉을 원천적으로 차단했을 것이다.
이렇게 오랜 기간 소규모 집단 내에서 계속 감염이 이루어지며 다만 기록에 남아 있지 않을 뿐 많은 마을과 가족이 사라졌을 것이다. 끊임없는 감염이 계속 여러 소규모 집단에 갈마드는 동안 집단 내에서는 흑사병에 완벽하지는 않지만 저항성을 가지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 저항성이 흑사병을 유의미하게 억제하는 저항성이라면 그 사람과 나아가 그의 가족은 살아남았을 것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저항성의 정도는 그리 높은 정도가 아니기에 또 많은 개인과 소규모 집단이 사라졌을 것이다. 또다시 많은 세대로 댓가를 치르며 점점 더 높은 정도의 저항성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하다가 드디어 정상적인 영양 조건과 위생 환경이 주어질 경우 흑사병에 대해 고도의 저항성을 가지는 사람들이 등장했을 것이다.
이런 면역력 획득 현상은 거의 확실하게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만약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이 저항성을 얻지 못했다면 이 사람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자연 다큐멘터리 방송을 보면 남미의 아마존 우림에서처럼 고립된 작은 집단들로 이루어져 있는 사회에서는 족내혼이나 마을 내에서의 결혼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경우가 많았고, 결혼은 몇날며칠을 가야 있는 동떨어진 마을 간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몽골의 보르치긴 족이었던 칭기즈칸 또한 어린 나이에 말을 타고 700km 이상을 달려 메르키트 족 마을에서 그의 아내가 되는 보르테와 약혼한다. 의도적이건 아니건 이러한 족외 혼인을 통해서 흑사병 저항성 유전자처럼 우수한 유전자가 집단에 도입되기를 바란 것이다. 아마도 족외혼을 엄격하게 행한 부족들은 그렇지 않았던 부족들에 비해 자연선택에서 이점을 가지고 살아남을 확률이 높았을 것이다.
많은 사람과의 접촉이 일어나지 않는 생활환경과 오랜 기간 동안 세대를 달리 하며 일어난 병원체와 사람들의 동거는 결국 어느 정도의 병 피해가 일어나기는 하지만 그렇다 해서 파멸적인 정도로까지 일어나지는 않는, 어느 정도의 평형을 이룬 수준에서 계속 이루어져 왔을 것이다.
병원체의 입장에서도 감염 대상의 전멸은 자신들의 종말을 의미한다. 이런 여러 가지 상황은 병원체와 사람의 면역 체계 간의 피해 정도에 대한 암묵적 동의를 이끌어냈을 것인데 이것이 학술적으로는 흑사병원체-사람 간 동적 평형이며, 현실적인 상황에서는 흔히 말하는 풍토병이다. 걸리면 아프고 힘들지만 어느 정도의 휴식과 영양 보충으로 자체 면역력을 끌어 올리면 스스로 치유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미 이 사람들 면역 체계의 T 세포와 β 세포에는 흑사병 계열의 병원세균들이 구사하는 인체 침략 계획과 공격 수단들에 대한 가장 효율적인 대처 계획이 기억되어 있으며 그 흔적은 유전체에까지 남게 된다.
이런 대처 능력은 결국 세대를 거듭하며 치른 선조들의 무수한 희생 위에서 세워진 것이다. 그렇다면 유교의 조상에 대한 제사를 좋은 유전자를 선물로 남겨준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리는 것이라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흑사병과 또 하나 세계 역사를 바꾼 천연두와 홍역 피해를 분석해 보면, 인류가 COVID-19에 대한 저항성을 초기 피해를 최소로 줄이면서 자연적으로 어느 정도의 면역력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소수의 인구끼리 고립된 지역에서 거의 교류 없이 오랜 세월 살아가는 것이지만 이는 4차 산업 혁명이 진행 중인 현대 사회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의 면역능력을 수년 내에 자연적으로 급속하게 상승시키려면 초기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 유럽의 COVID-19는 확진자의 2.7% 가량을 죽이는데 특히 고혈압이나 당뇨 등의 기저 질환이 있는 70세 이상의 노령 인구일 경우 사망률은 80%를 상회한다. 스웨덴에서 한 때 고려했던 집단 면역은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이 세대를 지나 겨우 획득했던 면역력을 짧은 시간에 얻으려 하는 것이었으며, 이는 많은 생명의 희생을 요구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에서 관계라 하면 당사자 간 이익을 추구하는 거래, 회사 조직 내에서의 조직, 국제 외교 관계를, 물리학자들은 소립자 간의 밀고 당김을, 천체물리학자는 중력장 내에서 행성-항성 간 인력과 척력을, 생물학자들은 작게는 단백질-핵산 분자 간 상호작용에서부터 말미잘-흰동가리돔(니모?) 간의 공생을 생각한다.
하지만 생물 사이에서 일어나는 관계는 본질적으로 사람의 선입견과 아무 관계가 없다. 살려고 필사적으로 달리는 토끼나 먹고자 추적하는 여우는 서로 아무런 잘못이 없다. 토끼는 당연히 자신의 목숨을 위해 달리고 그렇게 진화했다. 여우는 당장 토끼를 못 잡으면 새끼가 굶어죽을 수 있다.
생물 간의 관계를 사람의 시각에서 보아서는 안 된다. 관계는 그 자체로 진화의 산물인 것이며 그냥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다시 한 번 생 떽쥐베리[Antoine Marie Jean-Baptiste Roger de Saint-Exupery; 1900. 6. 29. ~ 1944. 7. 31.(추정)]의 '어린 왕자'에서 여우와 어린 왕자의 대화를 인용하고 내 나름의 해석을 얹을까 한다.
“아니, 난 친구들을 찾고 있어. ‘길들인다’는 게 뭐지?”
“그건 사람들이 너무나 잊고 있는 건데…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여우(COVID-19)가 말했다.
“관계를 맺는다고?”
“물론이지.” 여우(COVID-19)가 말했다.
“넌 나에게 아직은 수없이 많은 다른 어린아이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한 아이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나는 널 별로 필요로 하지 않아. 너 역시 날 필요로 하지 않고. 나도 너에게는 수없이 많은 다른 여우(전염병)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한 마리 여우(전염병)에 지나지 않지. 하지만 네가 나(COVID-19)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저항성과 COVID-19)를 필요로 하게 되는 거야. 너는 내게 이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거야. 난 네게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고….”
“이제 좀…알 것 같아.” 어린 왕자가 말했다.
“꽃 한 송이가 있는데 말이야…그 꽃이 날 길들였나봐….”
“그럴 수도 있겠지.” 여우(COVID-19)가 말했다.
“지구에는 별의별 일이 다 있으니까….”
이번의 관계가 보다 쉬운 서로 간의 길들임으로 빨리 암묵적 동의를 맺었으면 한다.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생명자원부 유전자공학과 농업연구사 안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