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민주당 ‘무공천 번복’이 남긴 것
2021-11-02 송병형 기자
민주당이 예상대로 2일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공천 방침을 확정했다. 전날까지 이틀 간 실시된 전당원 투표 결과는 찬성이 86.64%로 반대 13.36%를 압도했다. 지난 4.15 총선을 한 달 앞두고 실시된 비례위성정당 창당 찬반투표 때를 훨씬 웃도는 찬성표다. 당시는 찬성이 74.1%였다.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민주당 당헌(제96조 2항)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 전신)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정치혁신 차원에서 강제규정으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86.6%라는 압도적인 찬성률은 재보궐선거에서 공천을 해야 한다는 전 당원 의지의 표출이다.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후보를 공천해 시민들의 선택을 받는 것이 책임정치에 더 부합한다는 이낙연 대표와 지도부의 결단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최인호 수석대변인)라고 자평했다.
물론 비난 여론을 의식한 사과 메시지도 있었다. 이낙연 대표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피해 여성께 거듭 사과를 드린다”고 했다. 또 “사과 진정성을 갖기 위해 실천이 따라야 한다”며 “윤리신고센터, 젠더폭력상담센터를 열어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와 주요 당직자의 성비위·부정부패 등 조사와 후속조치에 임하겠다”고 했다. 실제 이날 민주당은 당내 상설기구인 윤리감찰단 직속으로 윤리신고센터와 젠더폭력신고상담센터의 운영을 시작했다.
이번 결정은 사실 오거돈 전 부산시장과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문 파문 당시부터 예견된 일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현 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단면이란 점에서 다각도로 짚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민주당식 개혁의 한계다. 정당은 정권 획득이 목적이자 근본인 결사체다. 서울시장이나 부산시장 선거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선거임에 분명하다. 신동근 최고위원이 무공천을 강제하는 당헌을 두고 “과잉금지”라고 비판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5년 전 문 대통령이 무공천 강제조항을 만든 것 자체가 처음부터 지키지 못할 ‘말의 성찬’에 불과했거나 아니면 충분한 고려 없이 졸속으로 만들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그것도 아니면 자당 소속 서울시장이나 부산시장의 도덕성을 과신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른바 도덕적 선민의식이다. 박 전 시장 사망 이후 민주당이 그토록 성추행 피해자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날 이 대표는 ‘사과의 진정성’을 강조했지만 민주당 윤리규범에 여전히 ‘피해 호소인’이란 표현이 남아있다는 점은 씁쓸함을 더한다.
소수 강성 당원에 휘둘리는 정당 구조 문제도 재확인됐다. 87%에 가까운 압도적인 찬성이라고 하지만 투표 참여율은 26.35%에 불과했다. 지난 3월 비례위성정당 찬반투표는 이보다 못한 22.5%였다. 집권여당의 진로를 넘어 국가의 향방을 가를 중대 사안이 소수에 휘둘리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