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사랑의 김장 나누기’로 온기 가득한 겨울을

2021-11-20     매일일보
박근종
[매일일보] 2020년 한국 사회의 화두(話頭)는 ‘불평등’이다. 평등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바람이 다양한 형태로 노정(露呈)되고 있는 가운데 코로나19의 팬데믹(Pandemic)은 그동안 수면 아래 감춰져 있던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의 민낯을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폭등하는 부동산 가격은 국민이 불평등을 온몸으로 체감하기에 충분했다. 빈부격차와 계층 간 소득분포의 불균등 정도를 0부터 1까지의 수치로 나타내는 소득 불평등 지수인 ‘지니계수(Gini’s coefficient)‘는 0.32로 OECD 회원국 가운데 평균 수준이지만 연금을 비롯해 사회적 안전망이 탄탄하지 못한 한국은 회복탄력성이 약하고, 한 나라의 가계와 정부의 순자산을 국민순소득으로 나눈 값인 ‘피케티 지수’는 8.6으로 선진국 수준의 5~6배에 높으며 일본과 스페인에서 부동산버블이 정점이던 때보다 높은 수준이다. ‘피케티 지수’가 높다는 것은 ‘자산소득’이 ‘노동소득’에 비해 더 빠르게 증가하는 상황으로 자산을 처음부터 많이 가진 사람은 그 자산으로부터 파생되는 임대·배당·이자 등의 소득을 누리면서 부를 세습하고, 노력으로는 도저히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불평등이 심화(进一步)됨을 의미하며, 불평등의 증가는 사회구성원들 사이의 간극(間隙)을 넓히고 유대(紐帶)를 약화함으로써 구성원들 간 이질성을 증가시켜 사회 통합까지 약화(减弱)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통계청이 11월 11일 발표한 ‘2020년 10월 고용동향’을 보면 15~64세 고용률(OECD 비교기준)은 65.9%이고 청년층(15~29세) 고용률은 42.3%이며, 실업률은 3.7%이고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8.3%이며, 취업자는 2,708만8천 명에 그쳤고, 역시 통계청이 11월 19일 발표한 '2020년 3/4분기 가계동향 조사 결과'를 보면, 소득 상하위 20% 간의 월평균 소득이 6배 이상 큰 폭의 차이를 보였고, 소득 5분위별 가계수지를 보면, 상위 20%인 5분위는 1천39만7천 원으로 약 2.9% 증가했으나, 소득 하위 20%인 1분위는 163만7천 원으로 1.1% 감소해, 소득 20% 상하위 간 격차가 874만 원, 6.3배 차이를 보이는 등 양극화가 갈 수로 심화되고 있다. 이렇게 양극화의 심화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충격의 어려움으로 모두가 힘든 시기에 ‘김장 나누기 행사’는 나눔의 미학으로 우리 사회의 훈훈한 온기가 아닐 수 없다. 조선의 실학자 성호 이익은 상류층 인사들의 재산을 덜어다가 하류층 백성들을 도와주는 ‘손상익하(損上益下)’의 정책 강조했고, 다산 정약용은 부자들의 재산에서 덜어다가 가난한 사람에게 보태주는 ‘손부익빈(損富益貧)’의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 김장 나눔 행사야 말라 1808년 프랑스 정치가 피에르마르크가스통 드 레비(Pierre Marc Gaston de Lévis)가 처음 사용한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실천이 아닌가 생각한다. 무·배추·오이 등의 여러 채소를 소금에 절이고 양념을 버무려 발효시킨 ‘김치’는 약 3천 년 전의 중국 문헌 '시경(詩經)'에 오이를 이용한 채소절임을 뜻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저(菹)'라는 글자가 김치에 대해 언급한 최초의 문헌이고 상고시대 때 김치류를 총칭하는 말로 소금에 절인 야채를 뜻하는 침채(沈菜)라는 말에서 오늘날 김치의 어원을 찾을 수 있고, '침채(沈菜)'가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침채 → 딤채 → 김채 → 김치로 변화를 거치면서 김치가 되었으며, 문인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실린 ‘가포육영(家圃六詠)’에는 ‘순무를 장에 넣으면 삼하(여름 3개월)에 더욱 좋고, 청염(淸鹽)에 절여 구동지(겨울 3개월)에 대비한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고려시대 때 부터 김장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김장 문화’는 2013년 12월 5일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열린 제8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에서 인류무형유산(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으로 등재되었으며, 오늘날도 김장철을 맞아 ‘나눔’과 ‘배려’라는 문화적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올해도 행정기관, 종교단체, 지역사회,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모여 사회복지시설, 결손가정, 취약계층, 불우이웃에 보낼 ‘사랑의 김장 나누기’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절이고 버무르고 담는 일련의 공동작업으로 한국인의 정체성을 일깨워주는 동시에 나눔의 정신을 깨닫고 실천하는 동인(動因)이 되어 더불어 상생하는 끈끈한 결속력과 돈독한 유대감을 더한다. 특히, 양극화의 심화와 코로나19의 경제충격으로 가뜩이나 겨울나기가 버겁고 어렵고 가슴 시린 취약계층과 불우이웃들에게 한 포기의 김장은 우리 사회의 훈훈한 온정을 느끼게 하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작지만 나눔의 미학 실천으로 따뜻하고 온기 가득한 겨울을 보냈으면 한다.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