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도청공화국’
“쉿~ 누가 우리 대화를 듣고 있어”

기상천외 범죄 장비 첨단시대
청계천 일대가면 ‘원하는 다 구한다’

2005-08-01     김윤정 기자

안기부 불법도청 사건을 계기로 과거 국가기관에 의한 도청이 광범하게 이뤄졌다는 사실이 새삼 밝혀져 주목을 끌고 있다.

이렇게 정보기관에 의한 전문적인 도청도 문제지만 심부름센터 등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벌이는 도청행위는 범죄로 이어지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도청뿐만이 아니다. 기상천외한 첨단장비로 범죄가 일어나고 있어 그 문제는 심각하다.
지난 달 전국을 돌며 첨단장비로 빈집털이를 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그들은 빈 아파트를 찾아내 자체제작한 특수기구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우유투입구로 들어간 초소형카메라는 고성능 모니터를 통해 안쪽의 상황을 그대로 전달해주며 문을 여는데 걸리는 시간은 30초를 넘지 않는다고. 첨단 장비를 통해 그들은 고가의 반지와 목걸이 등을 훔쳐냈다.

작년 수능부정행위 사건에 일명 선수폰이 사용되면서 범죄 장비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다. 최근 들어 범죄에 사용되는 각종 장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첨단화·최신화 되어가고 있는데다 서울의 전자 상가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구입할 수 있다.

파는 것조차 불법인 명함첩 도청기, 전자계산기 도청기 같은 각종 도청 장치부터 핸드폰 몰카, 카메라폰 같은 몰카에, 이색 몰카 탐지기까지 전자상가 주변을 기웃거리기가 무섭게 호객 행위꾼이 다가온다.

컨닝 시 사용되는 무전기와 리시버에서, 1cm 초소형 몰래카메라, 전기 스위치에 사용되는 구리선을 이용한 부정행위용 액세서리는 상상을 초월할 지경이다.

도청장치와 몰래카메라 등 범죄장비들이 점점 기발해지자 이를 막으려는 경찰과 보안업체들도 점점 첨단화가 되어가는 추세다.

한 대기업의 회의 현장에서는 도청장치와 몰래카메라 설치를 확인하려는 보안 전문가는 점점 발전되어 가는 도청장치와 몰래카메라를 탐지하기 위해 2천만원 상당의 고가탐지기까지 동원한다.

설치하고 제거하고, 쫓고 쫓기는 범죄 장비와의 전쟁이 시작됐다.  이같은 끊이지 않은 악순환의 연결 고리 탓에 대한민국이 ‘도청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일당 4명이 오피스텔을 거점으로 인근 가정집의 무선전화 내용을 강력 수신기로 도청하다 경찰에 적발된 사건은 도청의 그물망이 어디까지 펼쳐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서울 청계천 세운상가 3층. 도청감지기를 파는 상점들이 줄지어 있었다.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도청기를 집단적으로 거래하는 곳이다.

한 상점를 찾아 ‘도청기를 구입할 수 있느냐’고 묻자  “도청장치는 80만원부터 수백만원까지 있는데 40만원에 줄테니 그냥 가져가라”며고 말했다.

또다른 상점에선 "요즘 안기부 X파일 사건이 터지고나서 경찰 단속이 심해진 탓에 물건을 아예 갖다 놓지 않는다"고 말했다. 

청계천 전자상가에서 주로 판매되는 도청 관련 기기들은 도청 장치와 이를 제거하는 탐지기다.

가장 흔한 유선전화 도청기는 수화기나 전화기 내부 회로기판에 연결하는 간단한 설치 방법으로 초보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품목이다. 가격대가 20만~40만원대로 비교적 저렴하다. 범죄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진 광대역 수신기는 가정용 무선전화기 도청 협박 사건의 대표적이다.

가정용 무선전화기가 주파수 대역이 낮고 보안성이 없어 수신기를 통한 범죄 대상으로 안성맞춤이라는 것이다.

광대역 수신기를이용하면  500m까지 전파를 받아들일 수 있는 무선전화기의 내용을 그대로 들을 수 있다.

이 수신기의 가격대는 10만원에서 1000만원까지 폭넓게 형성돼 있다.  또 최첨단 도청장치들도 등장하고 있다.

레이저 도청기는 유리창에 레이저를 발사, 사람의 육성에 미세하게 떨리는 유리창의 진동에서 추출한 음성성분을 분석해 수신하는 첨단장치다.

전문가들은 “이 도청기는 국내 몇 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국제적인 산업스파이 이 주로 이용하며 가격은 최고 6천만원선에서 거래되고 있다”고 전했다.

또 청진기 원리를 이용한 콘크리트 도청기는 송신기를 바닥에 밀착해 최대 50m반경안의 모든 소리를 깨끗이 들을 수 있다.

‘패시브 리플렉터’라는 첨단 도청장치는 신축건물을 지을 때 시멘트안에 수신장비를 넣어 완벽에 가깝게 도청할 수 있다.

 과거 러시아에서 미 대사관을 지을 때 이 장비를 넣었다가 미국에 발각돼 건물을 다시 지은 일화는 유명하다. 수신장비 배터리 수명이 10년간 유지된다.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난 적은 없지만 휴대폰에 대한 도청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한때 휴대폰을 도청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놓고 정치권에서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휴대폰을 불법 복제한 이른바 ‘대포폰’을 이용하며 얼마든지 도청이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난해 모 재벌그룹 전·현직 직원들이 휴대폰을 불법 복제해 위치추적을 당했다고 회사 임직원들을 고소했다. 이들은 휴대폰은 실명으로만 가입할 수 있는데 사망한 사람의 휴대폰 요금이 정산되고 서비스가 계속 이용되고 있는 사실을 들며 도청 가능성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