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수능인지 코드 교육인지...이런 한국사 문제라니

2021-12-06     송병형 기자
송병형
지난 3일 치러진 2021학년도 수능 한국사 20번 문제를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그 중 하나가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홍보하고 더 나아가 학생들에게 정부 대북정책의 당위성을 주입시키려는 의도가 담긴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근거 없는 의심이라고 일축하기엔 문항 구성에 문제가 많다. 출제진은 ‘지난해 남과 북은 유엔에 동시 가입한 후 대결과 단절의 시대를 끝내고 평화와 공영의 새 시대를 열기로 합의하였습니다. 한반도의 비핵화를 자주적으로 실현하려는 우리의 노력도 북의 호응으로 큰 진전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통일은 소망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라는 지문을 제시하고, ‘다음 연설이 행해진 정부에서 추진한 정책으로 옳은 것을 고르라’고 요구했다. 5가지 선택지는 ‘남북 기본 합의서를 채택하였다’는 보기만을 제외하고 누가 봐도 현대 이전 역사적 사실을 열거했다. 사실상 점수를 주기 위한 보너스 문제인 것이다. 유례없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올해 고3 수험생들이 사실상 학업공백 상태에서 수능을 치렀고, 수능 당일조차 3차 유행의 위기상황에서 치러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학생들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출제진의 배려를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니다. 그러나 ‘도가 지나치게 쉬운’ 문제에 배점까지 높은 3점을 배정했다면 신중하게 주제를 선택해야 했다. 문항의 지문은 80년대 말 공산권 붕괴를 계기로 북방외교정책을 펼친 노태우 전 대통령의 1992년 연설이다. 1991년 9월 남과 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다음해 노태우 정부는 남북 기본 합의서를 채택했다. 신군부 정권이라고 하지만 발췌된 노 전 대통령 연설 일부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 철학을 마치 대변하는 듯한 내용이다. 세계사의 격변 속에서 민족의 자주적 통일을 이루려는 국민적 염원이 담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노태우 정권 이후 한반도 정세에는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 김영삼 정부 들어 북한의 핵개발은 한반도의 중대위협으로 부상했고, 남북 기본 합의서 채택이 무색하게 불과 이년 뒤 미국 클린턴 정권이 북폭 실행 직전 중단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이후 근 30년 동안 북한은 앞에서는 협상으로 시간을 끌며 뒤에서는 핵개발에 매진했다. 지금 시점에서 북핵 문제를 간과한 통일 당위론은 매우 위험한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다. 과거 독재정권에서 학생들은 정권이 주입하는 사상을 학교에서 강제로 외우고 체화해야 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문구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은 개인의 인권보다 국가주의를 우선하는 인식을 학생들 머릿속에 심었다. 행사 때마다 학생들이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라고 낭송했던 국기에 대한 맹세 역시 마찬가지다. 군사 독재정권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 ‘신권위주의’라는 말이 회자된다. 한국사 20번 문항이 신권위주의 식의 코드 교육이 아니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