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LG-SK, 배터리 소송전 “합의는 안되겠니?”
[매일일보 문수호 기자] 지난해 4월 LG화학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소송에서 ITC가 지난 2월 SK이노베이션의 조기 패소 판정을 내린 가운데 최종 판결을 미루고 있다.
ITC는 10월 5일 예정된 최종 판결을 10월 26일로 연기를 발표했고, 이후 12월 10일로 재연기한 후 내년 2월 10일로 세 번째 연기를 발표한 상황이다. 이러한 연기 사례는 이례적인 것으로, ITC는 최종 판결을 세 번이나 연기한 배경을 밝히지 않고 있다.
LG화학 측은 코로나19로 인해 연기한 것으로 판단했지만, 이는 사실상 미국에서 합의를 종용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ITC가 세 차례나 판결을 연기하면서 현재 최종 판단에 대해서는 조 바이든 정부로 넘어간 상태다.
ITC 역사상 조기 패소 예비판결이 최종 판결에서 뒤바뀐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특히 ITC 결정에 대한 미 대통령 거부권도 범죄에 해당하는 영업비밀 침해는 한 번도 시행된 사례가 없다. 이로 인해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과의 합의금 협상에서 우위를 가져갈 수밖에 없고, 양사 간 합의금 차이가 심각할 정도로 크다는 게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세 차례나 최종 판결이 무산됐다는 점은 미국 정부도 집안싸움은 내부에서 해결하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이유는 당연히 미국은 LG화학의 승리를 선언하면 경제적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조지아 공장이 셧다운 될 수 있는 상황은 미국 정부도 원치 않는다는 뜻이다. 코로나19로 실업률 상승 등 경제에 상당한 타격을 받은 미국이 미래 산업이라 불리는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미국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에 이어 조 바이든 당선자 역시 리쇼어링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 내 제조업 재건설이라는 기조는 조 바이든 정부 역시 이어갈 모양새여서 전기차 배터리 공장의 셧다운은 그들이 바라는 그림이 아닐 수 있다.
결국 최종 판결을 미루는 방법으로 합의를 기다리는 모양새다. 이 정도면 사실상 판결이 번복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정부에서 자국 이익을 위해 판정을 번복할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최종 판결이 나지 않고 계속 미룬다는 것은 판결 사실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득이 되는 공장의 셧다운은 미국도 바라지 않는다는 점 또한 세 번의 연기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LG와 SK의 합의가 최우선 방법인데 양사 간 합의금 액수는 격차가 너무나도 크다. SK이노베이션은 수천억원대를 원하는 반면, LG화학은 수조원대를 요구하고 있어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신설 배터리 기업의 탄생이 난무하는 판국에 배터리 기술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시장 선점을 통해 치고 나가야 할 중요한 순간에 양사 간 대립으로 K배터리의 전망에 먹구름이 끼었다는 점이다. 중국과 일본은 호시탐탐 한국이 차지한 자리를 넘보고 있고, 유럽과 미국의 완성차 업체들은 합작법인을 통한 배터리 사업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배터리 소송전 장기화와 더불어 국내 기업들이 배터리 화재 등의 이슈로 인해 불안감을 주는 사이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은 K배터리에 대한 불신이 쌓여가고 있다. 한국에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빼앗긴 중국 기업들도 시장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해외 공장 건설에 나서고 있다. 이러는 사이 국내 협력사들은 일감 부족으로 고사 직전에 놓여 있다.
유안타증권과 흥국증권 등 국내 증권사에서 산정한 합의금 수준은 약 2조원 규모라 한다. 양사 간 금액 차이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보이지 않는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 기업 측면에선 경쟁사의 퇴출이 가장 아름다운 그림일 수 있지만, 제 3자 입장에서는 양사 간 조율을 통한 원만한 합의가 이뤄지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