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지난 촛불카드 다시 ‘만지작’…공안몰이 신호탄?

<촛불전쟁 2차전 나선 MB정부>

2010-07-10     류세나 기자

유모차부대 회원 44명 무더기 소환…“중복처벌 가능성도”
건국대 학생간부 3명, 간첩전문 수사국 ‘보안분실’로 연행
안보위해사범 100일 작전’ 하달…“실적쌓기 수사” 의혹 제기
“일단 잡아놓고 국가보안법으로 엮어 넣겠다는 심산” 주장도

[매일일보=류세나 기자]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로 촉발됐던 ‘촛불집회’를 둘러싼 경찰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지난 5일 하루 사이, 촛불집회에 참석했던 인터넷 카페 ‘유모차부대 엄마들’ 회원 등 주부 44명에게 도로무단 점거 혐의로 소환을 통보했는가하면, 건국대 총학생회장 등 대학생 3명을 촛불집회에 적극 참여한 혐의(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로 강제 연행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이들 대학생들은 국가보안법 관련 사범들을 주로 담당하는 경찰청 보안국에서 2박3일간 조사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각에서는 “일단 집시법 위반으로 잡아놓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캐 사건을 확대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또 경찰이 최근 국내 간첩 및 안보위해 사범 검거를 위해 ‘100일 수사’를 진행 중에 있다고 밝힌 것을 두고 “공안사범 검거 실적을 올리기 위해 1년이 지난 지금, ‘촛불 뒷설거지’를 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5일 인터넷 카페 ‘유모차부대 엄마들(현 촛불유모차와 함께하는 촛불가족)’ 회원 등 44명의 주부들에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일반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출석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촛불 유모차 부대’ 집단 출석요구로 논란 확산

경찰에 따르면 이번 조사는 인터넷 블로그에 유모차 부대 회원들을 비방하는 글을 올려 명예훼손 혐의로 피소됐던 한 블로거의 고소로 시작됐다. 당시 이 블로거는 자신의 블로그에 “집회 현장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는 것은 아동학대다. 또 유모차 부대가 데리고 나온 아이들은 실제 자신들의 아이가 아니었다”는 글을 올렸다가 명예훼손으로 올 3월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이 블로거는 “유모차 부대가 자신들의 아이를 데리고 집회에 나온 것이 사실이라면 도로를 무단점거한 것도 사실일 테니 관련법규에 따라 처벌해달라”며 자신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던 피고발인 44명 모두를 고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밝혀진 바에 따르면 소환장을 받은 44명의 주부 중 2명은 이미 지난해 9월 유모차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조사를 받은 바 있으며, 현재 검찰 조사가 진행 중에 있다. 이에 대해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피의자가 지난해 9월 접수된 사건에도 연루돼 있어도 범죄날짜가 다르다면 중복 처벌을 받게 될 수도 있다”면서도 “다만 처벌 여부는 조사가 끝나야 알 수 있다”고 말을 아꼈다.이와 관련 유모차 카페 한 관계자는 “경찰이 증거로 제시한 사진은 인도를 따라 걸어가다가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 잠시 근접한 차도로 내려가 걷고 있을 때 찍힌 것”이라며 “도로점거의 기준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또 다른 관계자는 “내 아이들에게 깨끗하고 안전한 먹거리와 바른 교육, 안정된 삶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에 촛불을 든 것이 이렇게 큰 대가를 치르게 될 지 몰랐다”며 “태극기 퍼포먼스를 했을 때도 주위에 있던 경찰의 허락하에 했다”고 주장했다.한국여성단체연합은 6일 ‘경찰은 촛불 유모차 엄마들의 표적 탄압을 중단하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고 “1년여가 지난 이 시점에서 유모차 부대 엄마들을 무더기 소환한 것은 이들에 대한 보복성 고발이자 표적수사가 아닌지 심히 의심스럽다”며 “현 정권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꼬투리를 잡아 소환∙처벌하려는 것은 정부에 대한 비판의견 자체를 통제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집시법 위반’이라더니 보안분실에는 왜?

유모차부대 회원들이 소환장을 받은 그날 오후, 건국대 하인준(21) 총학생회장을 비롯한 건국대학교 학생간부 3명이 집시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경찰에 강제연행 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경찰은 5월 21일 이들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지난 5일 주거지 등에서 각각 검거,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 위치한 경찰청 보안3과(보안분실)에서 2박3일간 조사를 받게 했다. 건국대 학생간부 3명의 연행이 논란이 되고 있는 점은 바로 이들이 주로 공안사범들을 수사하는 ‘보안분실’에서 조사를 받았다는 점이다. 홍제동 보안분실은 경찰청에서 별도로 운영하는 사무실로 간첩,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 산업스파이 등을 수사하는 공안기관이다.또 보통 집시법 위반의 경우 경찰은 3차례에 걸친 소환장을 발부하고, 이에 불응할 시 체포영장을 발급받아 피의자를 관할 경찰서로 연행해가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번 건의 경우 소환장 없이 바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경찰관계자는 “해당 학생들은 지난해 촛불집회 외에도 최근 6.10범국민대회 등 불법집회에 조직적으로 참가,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어 바로 체포영장이 발부될 수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건대 총학생회, 대학생 공안탄압 대책위원회 등 대학생 단체들은 3명의 학생간부가 홍제동 보안분실에서 조사를 받고 있던 지난 6일, 보안분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철지난 사건을 빌미 삼아 3명의 건국대 대표자를 소환장 발부도 없이 기습 연행한 것은 대학생 활동가들에 대한 명백한 표적수사”라며 “이는 또 불합리한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는 시민들을 탄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하 회장이 체포될 당시 함께 있었다는 여자친구 김정은(22)씨는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평상복을 입은 네 명의 아저씨가 다가와 남자친구의 팔짱을 끼우고 수갑을 채웠다”며 “자신들을 ‘경찰’이라고 밝혔지만 이들의 진짜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신분증 제시 등은 전혀 없었고 남자친구를 택시에 태운 채 어디론가로 이동했다”고 연행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기자회견에는 지난 5일 경찰에 연행됐던 또 다른 건국대 학생간부인 이태우(21) 정치대 학생회장의 어머니 김의숙(46)씨도 함께 했다.김씨는 “어젯밤(5일) 경찰로부터 ‘촛불집회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아들을 데리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벌건 대낮에 사람을 강제로 끌고 갔다는 사실에 너무 무섭고 두려웠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아들과 면회를 했을 당시 ‘집시법으로 잡혀와 있지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을 염두에 두고 조사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왜 자꾸 이 땅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도 없게끔 민주주의와 정의가 사라지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울분을 토해냈다.촛불시위 당시 한 TV토론회에 참석해 일명 ‘고대녀’로 알려진 김지윤 대학생 행동연대 상임위원장도 참석했다. 김 위원장은 “건대 학생간부들이 잡혀간 곳이 보안분실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내 귀를 의심했다. 보안분실은 죄 없는 사람이 들어가도 극한 고문으로 인해 없던 죄도 얻고 나오는 곳이 아닌가”라며 “현 정부에서는 ‘반 MB’를 외치기만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공권력을 동원한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 도대체 대학생들을 보안분실로 연행한 이유가 무엇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이날 자리에 모인 대학생들은 하나같이 “하인준 회장 등의 조사를 맡은 부서가 국가 안전보장을 위태롭게 하는 간첩 활동 및 안보위해사범에 대한 예방∙검거활동을 주로 하는 보안국인 만큼 이번 조사가 단순한 집시법 위반 혐의만으로 끝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경찰에 따르면 하씨 등은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와 용산참사 추모집회, 6.10범국민대회 등에 참가해 경찰버스를 파손하고 경찰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등 집시법 위반과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한 언론에 따르면 경찰은 3명의 대학생에 대해 찬양∙고무 등 국가보안법 위반과 관련한 내사를 진행 중에 있다. 이들 학생간부들은 지난 7일 오후 5시경 풀려나 현재 불구속 수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이명박 정부는 4.29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한 이후 국정쇄신과 국민과의 소통 부재 해소를 놓고 고민을 거듭해 왔다. 그에 따른 대안으로 서민을 위한 국정운영 방침을 세우고,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서울 이문동 시장을 방문하는 등 ‘민생돌보기’에 전면적으로 나선 것으로 비쳐졌다. 또 이는 이 대통령이 국민과의 소통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부각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 같은 대외적 행보와 달리 대통령의 지시를 받는 행정부 소속기관인 경찰에서는 공안정국이 형성되고 있어 현 정부에 대한 국민적 정서는 여전히 차갑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시국선언에 참여했던 서울 소재 대학의 A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현 정부가 소통하겠다고 밝힌 이후에도 달라진 게 없다’는 일각의 주장에 일정부분 공감한다”며 “현 정부는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위해 고민하기보다 형식적인 소통에 치우쳐 있는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실적경쟁 내몰린 경찰, 사건 뻥튀기로 실적 채워?

한편 경찰이 지난 4월부터 실시하고 있는 ‘안보 위해 사범 100일 수사’도 공안정국을 조성하는데 한 몫하고 있다는 비판여론에 시달리고 있다. 경찰의 보안사범 수사가 ‘실적 올리기’에만 연연해 과거행적을 문제 삼아 무분별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 일각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와 관련한 촛불집회에 참가했던 유모차 부대의 줄소환, 건대 학생간부 연행 등을 두고 ‘경찰의 실적 쌓기’라고 비난을 가하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