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 만에 깨진 SK 최태원 회장과의 ‘도원결의’

‘노사상생 프로젝트’ 가동 3개월차…계열사 곳곳 파열음

2009-07-10     류세나 기자

SK에너지, 연봉 반납금 줄이는 등 조율 나서기도

[매일일보=류세나 기자]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노사상생 프로젝트’가 3개월 만에 막을 내릴 위기에 직면했다. SK에너지 등 주요 계열사들의 노사가 협상 과정에서 잇단 파열음을 내고 있는 것. SK노사는 지난 4월 최 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한마음 한 뜻 대선언식’을 갖고 “회사가 어려울 때 노사가 함께 고통을 분담하는 대신 회사는 직원들의 고용안정을 위해 노력, 위기를 극복한다”는 내용에 결의한 바 있다. 그런데 이 같은 분위기도 잠시, 지난 5월 그룹측이 새로운 임금지급 시스템인 ‘HR(Human Resource)유연화’ 방식의 도입을 꾀하면서 모처럼 두 손을 마주잡았던 노사화합에 역풍이 불고 있다.

‘HR 유연화’는 최근 전 세계적인 경영위기 속에서 현금 유동성 압박 등 만약의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그룹차원에서 내놓은 방안이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연봉의 일부를 연초에 반납해 고정비용을 축소하는 대신 연말 개인의 경영성과에 따라 탄력적으로 성과급을 지급한다는 것. 이에 대해 SK그룹 측은 ‘경제위기 돌파를 위한 고정급 감소와 인센티브제 확대’라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노조측은 ‘기본급을 감소시킨 사실상의 연봉감소’라고 맞서, 양측간에 팽팽한 긴장감이 돌고 있는 상태다.

“임금 자진삭감 했더니 더 깎으려고?”

그렇다면 SK그룹 계열사 일부 노조들은 왜 지난 4월 결의했던 ‘고통분담·고용안정 노사선언’에도 불구하고 사측에 반발하고 있는 것일까.

SK에너지 등에 따르면 그룹 관계사 직원들은 노사선언 합의와 HR유연화 방침이 통보되기 전인 올해 초 연봉을 자진 반납하거나 동결한 바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매년 초 연봉의 일부를 반납하는 방안에 합의한다면 사실상 연봉 추가삭감에 동의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SK그룹 관계사 임원은 올 초 연봉의 10~20%, 직원은 5~10%를 반납한 바 있다. 또 SK에너지는 1962년 노조가 설립된 이래 처음으로 올해 임금 동결분과 호봉 승급분 모두를 회사에 반납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특히 SK에너지 노조는 HR유연화 방침과 관련, 사측에 협상결렬을 선언하는 등 팽팽한 대립각을 형성해오다 최근 사측이 한발 물러선 절충안을 들고 나와 협상논의가 재개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에너지에 따르면 당초 HR유연화 방침에 따라 전 임직원 연봉의 10~20%에 달하는 금액을 연초에 반납하기로 했던 부분을 10% 수준으로 하향조정하기로 결정하고 직원들을 대상으로 동의서를 받고 있다.
사측의 절충안은 세전 순이익이 흑자를 기록하더라도 3천억원 선에 미치지 못할 경우 최초 반납했던 연봉의 10%는 되돌려 받지 못한다. 반대로 3천억원을 넘길 경우 회사는 직원들에게 반납한 연봉과 함께 추가적인 성과급을 준다는 내용이다.

이와 관련 SK에너지 노조의 한 조합원은 “회사측에서 제시한 사항을 전 직원이 동의할지는 모르겠다”면서도 “사규에 따라 찬성하는 사람이 50%이상일 경우 그대로 시행될 것”이라고 말했다.또 다른 조합원은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연말 경영성과를 지켜본 후 연봉 반납분에 대한 보상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사측의 제안으로 직원들은 불안감에 떨고 있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이에 대해 SK에너지 관계자는 “외부에서 ‘협상이 결렬됐다’는 잡음이 들리기도 하는데 이는 어불성설”이라며 “원래 협상이라는 게 양측 간에 밀고 당기기도 하고, 휴지기를 갖기도 하면서 최종 결과물을 얻어내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이어 “노사간에 글로벌 위기에 대응해 고통분담과 고용안정에 대한 뜻을 모은 만큼 좋은 결실을 맺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하지만 이 같은 노사간의 마찰 분위기는 SK텔레콤 등 타 계열사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최근 SK텔레콤 노조 관계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 HR유연화와 관련해 더 이상 사측과 어떤 대화도 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SK증권 노조는 지난달 중순 그룹차원에서 사내 정보기술지원실을 다른 계열사인 SK C&C로 아웃소싱하는 문제와 관련, 같은 달 22일 비상대책위원회를 열고 출∙퇴근선전전 등 저지 투쟁에 나서기로 결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SK 그룹 관계자는 “외부에서 지적하고 있는 ‘노사분규’나 ‘노사상생 기조 물거품’ 등은 확대해석한 경향이 있다”며 “지난 4월 상생협력을 결의한 만큼 꾸준한 대화를 통해 노사간 합의를 도출해 낼 것”이라고 일축했다. 

노사화합 내 걸었던 최 회장 “쑥스럽네~”

그러나 업계 일각에서는 지난 4월 그룹 회장까지 참석해 노사상생 결의를 맺은 지 불과 석 달 만에 SK그룹 일부 계열사들에서 잇따른 불협화음이 들리자 “최태원 회장과 SK그룹 이미지에 흠집이 나는 게 아니냐”며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