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일제강점기 농촌수탈의 기억 화호리Ⅰ' 발간

일제강점기 정읍시 화호리의 농촌수탈과 해방 후 농촌 보건 역사 기록물

2022-01-06     김종혁 기자
[매일일보 김종혁 기자] 문화재청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는 일제강점기 농촌수탈과 해방 후 농촌 보건의 역사가 남아있는 전라북도 정읍시 화호리에서 실시한 학술조사 결과를 담은 <일제강점기 농촌수탈의 기억 화호리Ⅰ> 보고서를 발간했다.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에서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은 조선을 영구적으로 식민지화하기 위해 동양척식주식회사를 필두로 농업 이민정책을 적극적으로 실시했다. 이 시기 화호리는 정책 초기 이주지로 선정되면서 다수의 일본인이 이주하였고 대규모 농장이 개설됐다. 개간된 화호리의 많은 농지와 대지 소유권은 구마모토 리헤이(熊本利平) 등 많은 일본인에게 이전됐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자영농이었던 토착민은 소작농으로 전락하게 된 아픈 역사를 가진 곳이다.  해방 후에는 구마모토 리헤이 농장 소속 의사(醫師)였던 쌍천 이영춘 박사가 열악한 농촌 보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이곳을 떠나지 않고 농장 시설물을 활용해 입원실과 내과 등 5과 진료과목을 갖춘 화호중앙병원을 설립하였으며 현재도 이런 흔적이 남아있다. 쌍천 이영춘(1903~1980)선생은 일제의 수탈로 고통당하는 한국 소작농의 치료에 일생을 바친 농촌 보건위생의 선구자이다.  이번에 발간한 '정읍 화호리, 일제강점기 수탈의 흔적을 기록하다'보고서 에는 일제강점기 농촌수탈을 중심으로 한 화호리의 조사연구 성과를 수록했다. 먼저 △ ‘인문환경 고찰’에서는 식민지 화호리의 일본인 지주들, 정읍 화호리의 식민지 기억과 경관을 담았다. △ ‘문헌자료 고찰’에서는 신문기사, 지도, 사진, 공문서 등을 통해 당시 화호리 역사와 인문지리를 고증했다. △ ‘현장조사’에서는 건축물 현황과 부재 수종조사, 식생조사, 석재 산지조사, 디지털 기록을 시도해 근현대 유형자산에 대한 종합적 조사·연구ㆍ기록 성과를 수록했다.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는 이번 조사 성과를 더 쉽게 이해하고, 교육자료로도 활용될 수 있도록 화호리에 남아있는 적산가옥 6동과 해방 이후 공간변화 등을 디지털 영상자료로도 제작했다. 이 영상을 보고서에 정보무늬(QR코드)로 삽입해 스마트폰 등 휴대기기로 재생하여 볼 수 있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