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증세 없는 복지
2022-01-25 송병형 기자
2015년 초 정치권은 ‘증세 없는 복지’ 논쟁으로 뜨거웠다. 정확히는 여권 내부의 논쟁이었다.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는 2015년 2월 3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며 정치인이 그러한 말로 국민을 속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 권리로서 복지라는 혜택을 누리려면 국민 의무인 납세라는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김 대표는 또 “세수 부족 상황에서 재정 건전성을 지키려면 허리띠를 졸라 매고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다”며 “복지 예산이 어떻게 쓰이는지 전면적으로 점검한 뒤 이 결과를 토대로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없을 때 국민의 뜻을 물어보고 증세를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김 대표 연설은 집권여당 대표가 정권을 정조준 한 것이라 논란이 됐다. 당시 세간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때는 ‘증세 없는 복지’를 약속해놓고 실제로는 담뱃값 인상이나 연말정산 방식 변경 등을 통한 ‘꼼수 증세’로 줄어드는 나라 곳간을 채우고 있다는 비판이 많았다. 김 대표는 그 연장선상에서 ‘증세 없는 복지’ 문제를 대표연설에서 꺼낸 것이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는 며칠 뒤 김 대표와 유승민 신임 원내대표 등 여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불렀고,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한 번도 증세 없는 복지라고 직접 말한 적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불과 두 달 뒤 유 원내대표가 역시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다시 똑같은 비판을 가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유 원내대표는 2015년 4월 8일 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임이 입증되고 있다”며 ‘중(中)부담·중(中)복지’를 목표로 “세금을 누구로부터 얼마나 더 거둘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합의해야 한다”고 했다.
6년이 지난 지금 복지 논란 시즌2가 한창이다. 이번에는 증세 대신 재정건전성이 논란의 중심에 자리해 있다. 여권 차기주자들은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정세균 총리), “무소불위 기재부의 나라”(이재명 경기지사) 등 재정당국 때리기에 열심이다. “곳간지기를 구박한다고 무엇이 되는 게 아니다”(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라며 기재부를 옹호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곳간지기 보고 돈을 풀라고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현 정부 여권에서는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우리 재정건전성은 양호하다’는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이재명 지사의 경우는 한 발 더 나아가 “전 세계가 확장재정정책에 나서는데 안 그래도 너무 건전해서 문제”라고 한다. 나라 빚이 더 늘어나도 문제없다는 이야기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위기 상황을 감안하면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 더구나 수혜자인 국민의 입장에서는 내 빚이 늘어나는 대신 나라 빚을 늘리겠다는데 마음이 혹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명제가 맞다면 결국 국민들은 자신들이 받은 만큼 더 세금을 낼 수밖에 없다는 우려를 하게 된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려면 막연히 ‘아직 우리의 재정건전성은 양호하다’는 주장으로는 부족하다. 누구에게서 얼마를 거둬서 누구에게 얼마를 써야할지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