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정 큐레이터의 #위드아트] 짧은 폭설이 내린 날

2022-01-28     매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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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폭설에 이어 오늘도 아침부터 눈이 내린다. 흰 눈이 내려 앉아 도시가 모두 가려지기 시작한다. 사람마다 눈이 주는 의미가 다를 것이다. 출근길 폭설을 만난 직장인에게는 마음 급한 월급쟁이의 발목을 붙잡는 애물단지로, 최전방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청년에게는 중노동을 부르는 끔찍한 존재로 다가올 것이다. 반면 연인과 사랑에 빠진 이들에게는 낭만의 존재요, 어린 동심에게는 춥기만 한 겨울에 만나는 반가운 친구이며, 겨울 스포츠를 즐기는 이들에게는 더욱 반가운 손님일 것이다. 그리고 필자에게는 눈이란 많은 것을 보는 것보다 덜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주는 존재다. 도시에 흰 눈이 내려앉으면 모든 것이 과잉 상태였던 세상이 하나가 된다. 이때면 보려하지 않아도 늘 봐야했던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늘 봐야 하는 것들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게 되면 보이는 것 너머를 보려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게 된다. 일상을 넘어 삶 전반에 대한 성찰의 시간이 도래하는 것이다. 무수히 많은 정보와 관계가 얽히어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눈과 같은 필터가 필요하지 않을까. 짧은 폭설이 지나간 뒤 시야를 다시 가득 채우는 도시의 풍경은 다시 한 번 눈과 같은 필터의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예술가들의 통찰이 필요하다. 최은혜 작가의 작업은 보이는 형상을 단순화해 주고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을 하나의 관계 속에서 다시 보여준다. 보이지는 않지만 실재하는 것으로부터 파생된 현상들을 다시 간결하게 덜어내고 추상화하여 화면에 담아내는 작업이다. 작가는 주로 빛과 그림자를 매개체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간의 유기적 움직임을 시각화한다. 비행기 창문 너머로 보이는 시간을 알 수 없는 하늘빛이나 바람에 따라 모호하게 나타나는 빛의 무늬들, 찰나의 움직임 속에서 그려지는 빛의 색채들에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이 결합돼 있다. “나의 작업의 궁극적인 목적은 보이지는 않지만 실재하는 것으로부터 파생된 무수한 현상들과의 관계맺음, 즉 그것들과의 잠재적인 교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그것들을 다층적인 조형 형태를 통해 현상을 구현함으로써 나를 둘러싼 현상과의 관계를 구조화한다. 이를 통해서 보이지는 않지만 실재하는 것들이 함축하고 있는 다양한 의미들을 추구하는 것이다.”(작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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