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우수한 한국형 원자력발전소와 그리운 이승만

2022-02-02     송영택 기자
송영택
원자력발전소가 유명세를 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집권하자마자 에너지전환이란 이름아래 ‘탈원전’ 정책을 강력하기 추진하고 있다. 산업발전의 원동력이었던 전기생산의 주인공인 원전을 폐쇄 시키지 못해 안달이다. 원전 대신에 태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추진하며, 미세먼지 발생은 적지만 발전단가가 높은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를 늘리고 있다.  탈원전 추진 과정에서 7000억원 가량 투입해서 새 것처럼 보수해 10년 동안 원전을 가동해도 무방한 월성1호기를 조기 폐쇄 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신한울 3, 4호기 등 신규 원전 건설은 거의 백지화된 상태다.  월성 1호기 조기폐쇄에 결정적인 이유인 경제성 조작 의혹에 대한 감사원 감사보고서를 두고 진실공방이 치열하다. 에너지정책을 총괄하는 산업통상자원부는 감사원 감사에 앞서 관련 문서를 삭제해서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다. 검찰은 사무실에 몰래 숨어들어가 월성 1호기 관련 공문서를 삭제한 공무원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산업부 공무원이 삭제한 파일에는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이라 문서가 포함됐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려고 했다는 논란이 확산되자 산업부는 삭제한 파일이 남아 있었다면서 ‘원본’을 공개했다. 2018년 4월 27일에 열린 제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 경협이 활성화 될 경우를 대비해 아이디어 차원에서 검토한 자료라고 해명했다.  원전은 전기생산이란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데 정치권이 가만히 나두지 않고 있는 모양새다. 한국 원전의 시작은 6.25 전쟁이 발발한 4년 후인 195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6.25 전쟁으로 그나마 남아있던 산업기반 시설은 모두 폐허로 변했고, 북한에 70% 가량 의존했던 전기가 커다란 문제였다. 
한반도
1956년 이승만 대통령을 예방한 미국 전기기술자 워커 시슬리는 원자력에 관심을 가지라고 조언을 했고, 이 대통령은 석탄발전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 원전에 답이 있다는 판단 하에 주도면밀하게 추진해 나간다. 이 대통령은 정부 내에 원자력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할 조직인 원자력과를 문교부에 만들고, 1958년 원자력법을 제정하고, 1959년 원자력연구소를 설립한다. 미국과 원자력협정을 맺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가입하고, 한양대학교와 서울대학교에 원자력공학과를 신설한 것도 이 시점이다.  원전을 연구하고 현장에 투입할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1인당 6000달러를 지원하며 237명을 미국 영국 캐나다로 유학생을 보냈다.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이 60~70달러 수준이었고, 달러가 부족한 이 대통령은 20달러 이상 쓰이는 예산에 직접 서명 하던 때다.  또 하나의 담대한 결단은 1959년 차관 20만달러, 예산 20만달러 등 총 40만달러를 투자해 연구용 원자로 ‘TRIGA Mark-II’를 도입한 것이다. 이 연구용 원자료는 1962년에 가동을 시작했다. 마침 원전 기술을 습득하고 돌아온 유학생들은 연구형 원자로 운영과 더불어 한국형 원전 발전에 총 매진하게 된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이 원전산업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최초 상업원전인 고리 1호기가 1978년에 준공됐다. 2009년에는 한국형 원전 APR1400 4기를 UAE에 수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60여 년이 지나 핍박을 받고 있는 한국형 원전. 풍족한 전기를 쓸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이승만 대통령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