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배심제’ 확대·도입이 필요한 이유

2022-02-19     허남욱 변호사(법무법인 주원)
허남욱
[매일일보] 법조사회에 대한 국민의 시선이 따갑다. 대한민국의 오랜 검찰제도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공수처법이 통과됐고, 최근에는 중대범죄수사청 법안이 발의되는 등 이른바 '검찰개혁 시즌 2'에 접어든 모양새다. 법원 또한 이러한 불신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전 대법원장은 사법행정권 남용혐의로 구속된 상황이고, 최근 모 부장판사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와 관련해 재판의 절차 진행에 간섭하는 재판관여 행위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로서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탄핵이나 징계가 이뤄지지 않다가 최근 사직서 반려와 관련한 정치적 대화가 오간 대법원장과의 녹취록을 공개하는 초유의 사건으로 인해 사법부의 수장마저 국민들에게 지탄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헌법은 사법부의 독립과 법관의 신분보장을 위해 법관의 파면 절차에 대해 국회의 탄핵소추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필요로 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다른 일반 공무원보다도 엄격하다. 공정한 재판을 위한 법관의 신분보장은 법치주의의 핵심이기도 한데, 이는 유무죄의 최종 심판권자인 사법부가 정치 권력이나 금권적 권력 또는 각종 여론 등에 휘둘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국민의 뜻이 헌법에 반영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한 언론이 1995년 이후 25년간 법관에 대해 이뤄진 징계 43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별다른 단죄 없이 사표수리를 받은 법관이 30년간 32명에 달하고 억대 뇌물 수수, 음주운전 뺑소니에도 정직 이하 징계가 이뤄졌다고 한다. 다른 공무원 같으면 무조건 파면이 이뤄졌을 법한 사안에도 일반 공무원들에 비해 낮은 징계가 이뤄진 점은 일반 국민들로서는 쉽사리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렇게 법적으로 제정된 정식 법관 징계기준이 없는 상황에서는 내부적 봐주기식 징계라는 의혹과 비판을 벗어나기는 어렵고 이러한 현실은 국민들의 사법 불신을 더욱 키우는 결과가 될 뿐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현직 판사가 지하철에서 몰카를 촬영하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돼 약식명령을 받은 사건이 있었다. 이웃 일본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몰카를 촬영한 판사가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해당 판사는 무사히 퇴직해 변호사업을 하는 반면, 일본의 경우 탄핵·파면 절차를 거쳐 변호사 자격을 상실했다는 점에 비춰보면 우리나라는 일반 국민의 시각에서 징계가 제대로 이뤄졌다고 보긴 어려워 보인다. 또한, 유사한 사건에서 간혹 법관별로 반대의 법리를 적용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오죽하면 AI판사를 도입하자는 얘기까지 나오나 싶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도 최근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사건을 진행했던 적이 있는데, 사실조회 및 증인신문 등을 통해 왜곡된 사실관계가 바로잡히고 재판장의 요청에 따라 관련 논문까지 모두 찾아 제출했음에도 선고기일 직전 변론을 재개하고 공소사실을 변경할 것을 요청하더니 마지막 기일에서는 재판장이 ‘변호사님, 그래도 검사가 괜히 기소했겠나요?’라는 황당한 말을 해 두 귀를 의심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공소장만 보고 판결하면 되지 굳이 재판이 왜 필요한 것인가, 재판장의 예단이 지나치다는 의혹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이 같은 사례는 일부 법관들의 문제일 뿐 대다수의 법관들에 대해 현직 변호사들의 경우 재판에 대한 신뢰도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비록 일부의 경우라 하더라도 의혹이 있는 재판이 존재하는 이상 이를 바로잡을 필요성도 있는 것도 사실인데 법관의 독립이라는 제도적 뒷받침과 비교해 국민들이 이를 제재하거나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낮다. 국민들에 의한 법관탄핵이 가능한 일본이나, 탈세, 성추행, 신뢰실추행위와 관련 탄핵이 가능한 미국과도 비교되는 대목이다. 사법제도에 대한 국민의 참여와 관련해 우리나라는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에 의해 국민참여재판이라는 한국형 배심원제도가 근자에 도입됐다. 제정당시 매우 작은 범위의 사건에 대해서만 적용된 것이 합의부 사건까지 확대되도록 개정됐지만, 헌법상 배심제가 규정된 미국 등 다른 나라들의 경우와 달리 법률에 의한 것으로서 형사재판에 국한되고 그 대상사건도 제한돼 있는데다가 일본과 같이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경우가 정해져 있지도 아니하며, 결정적으로 배심원의 평결과 의견은 법원을 기속하지 아니하므로 최종 판단은 판사의 몫이라는 점에서 완전한 의미의 배심제가 도입됐다고 보기는 어려운 수준이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다. 사법부의 독립은 재판에서 외부압력에 대한 독립을 의미할 뿐 국민으로부터의 독립은 아닐 것이다. 심지어 미국의 경우 여러 주에서 법관징계위원회(Commission on Judicial Performance)의 구성을 보면 대부분 위원회 구성원 총 11명 중 판사 3인, 변호사 2~3인, 나머지 5~6명은 일반 시민인 경우가 많다. 일반 시민들의 법률전문지식 부족이 사실관계 판단에 있어 문제를 일으킬 수 있지 않냐는 우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간단히 증거법칙을 아느냐는 정도의 추상적이고 간단한 배심지도만이 이뤄지는 우리나라와 달리 각 범죄의 구성요건과 전문법칙 및 그 예외사항까지 상세한 배심교육이 이뤄지는 미국의 사례를 참고하면 될 것이고, 법은 일반인 상식의 최소한이어야 한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심지어 변호사들에게도 판결문의 전면적 공개가 이뤄지고 있지 아니한 현실에서 배심제의 확대도입은 민·형사 사건에 있어 전관개입 혹은 사법 뒷거래를 차단할 수 있다. 시민들이 직접 재판에 참여함으로써 그간 그들만의 전유물로 여겨왔던 법률적용 절차에 실질적 참여 기회를 제공해 사법작용에 대한 불신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의가 있다. 배심원의 평결이 비록 제한적이라 할지라도 특정한 경우에서는 법원의 최종판단까지 기속할 수 있는 방향으로 법이 개정되고, 비단 형사분야는 물론 민사분야에도 배심제의 전면적 확대시행을 위한 입법이 이뤄져 사법질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사법작용에도 보다 민주적인 통제가 이뤄지기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