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초장에 기를 확 꺾어야 해! 먼저 굽히고 들어가면 평생 끌려다닌다!” 막 신혼생활을 시작한 나에게 직장 선배들이 가장 많이 한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못난 말이지만, 그때는 그 충고를 곧이듣고 아내와 다투면‘미안해’라는 말을 꾹 참으며 며칠씩 서로 말 한마디 안 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사과’는 상대방에게 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신뢰감을 높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인간관계 전문가 해리엇 러너(Harriet Lerner)는 ‘진심 어린 사과는 상처를 입은 상대방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어떤 상황이든‘미안해’라는 말을 먼저 꺼내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먼저 사과하면 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하면 나의 값어치가 떨어진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함으로써 책임져야 하는 일들에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진심 어린 사과는 용서를 낳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사과야말로 상호 간의 신뢰를 회복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2006년,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병원 외과장 다스 쿱타는 수술 중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환부가 아닌 엉뚱한 곳의 조직을 떼어낸 것이다. 40년의 경력이 무너질 수 있는 치명적 사건이었지만, 굽타 박사는 환자와 가족에게“어떤 변명도 할 수 없습니다”라며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 굽타박사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은 환자 가족들은 수억 원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음에도 굽타 박사를 고소하지 않았다. 오히려 굽타 박사를 위로했다. 이일은 뉴욕타임스를 통해 언론에 보도되며 굽타 박사는 물론 병원의 신뢰도까지 높이는 계기가 됐다.
사과의 기본은 잘못을 깨끗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단순히 사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실수를 명확하게 인정하고 개선의 의지나 재발방지의 약속 등을 구체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적절한 시기의 명확한 사과는 상대방이 자신의 가치를 존중해 준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반면 진심이 담기지 않는 사과, 너무 늦은 사과는 자칫 관계의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사과를 할 때는‘사과의 언어’도 신경 써야 한다. “미안해. 그런데..”,“미안하긴 한데 나도 어쩔 수 없었어...”와 같은 변명 섞인 사과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으로 비춰줘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 대한항공의‘땅콩회항 논란’때에도 대한항공은‘잘못은 사무장이 한 것이며, 조현아 부사장은 당연한 지적을 했다’고 발표해 국민들로부터 큰 공분을 샀고 논란이 일파만파로 확대됐다.
우리는 가까운 관계일수록 더 많은 상처를 주고받는다. 하지만 쑥스러워서, 혹은 너무 가까운 사이라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상대방이 알아줄 거라 생각해서‘미안해’라는 먼저 말을 먼저 꺼내 않는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내가 표현하지 않으면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 지금 크고 작은 실수 들을 어떻게 수습하고 있나? 자존심 때문에 얼버무리진 않는가? 이 순간만 모면하면 된다는 생각에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하지 않는가? 이럴 때 ‘미안해’라는 용기를 발휘하자. 사과는 상대방은 존중하고 서로의 관계를 소중히 생각한다는 표현임을 잊지 말자. 용기 있는 한마디가 불편해진 관계를 회복하고 신뢰를 쌓는 가장 빠른 길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