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코로나 속 개미와 베짱이
[매일일보 이재영 기자] 코로나 확산 이후 우리 기업들이 돈을 쓰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한쪽은 미래를 위한 투자와 사업개편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는 국가 경제적으로 매우 긍정적인 자생 노력이라고 평가된다. 다른 한쪽은 주가관리나 경영권 방어에 몰두하며 기회를 낭비했다. 코로나 이후 글로벌 경제 구조 속에서 우리가 차지할 위치를 점쳐보면 후자의 소극적인 대응은 많은 아쉬움을 자아낸다. 코로나 이전에 품고 있었던 경쟁심화나 사양산업화 등 노후화된 산업구조의 리스크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제가 코로나를 극복한 이후 정작 우리는 도태될 수 있다는 불안을 안고 있다. 뜯어보면, 코로나로 인해 닥친 우리나라의 경제 위기는 주로 서비스업에 집중됐다. 제조업은 선방했다. 그 비결은 글로벌 과점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반도체 산업의 경쟁우위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에 석유화학 업종의 고부가가치 품목들도 감초역할을 했다. 전기차에 소극적였던 국내 자동차 산업이 글로벌 신에너지차 시장에서 빠르게 두각을 나타낸 점도 예상 밖의 선전이었다. 하지만 그밖에 대부분의 제조업은 어려움을 겪었다.
일부 업종의 특출한 활약을 제외하고서는 우리 산업의 구조적 리스크는 지속되고 있다. 코로나를 극복하기 위해 각국이 쏟아낸 경기부양책의 혜택을 본 측면도 있다. 리스크는 그 속에 일시적으로 감춰진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포스트 코로나는 우리에게 일면 두려움을 안긴다.
여러 아시아 신흥국들이 우리와 비슷한 수혜를 누린 것으로 분석된다. 경제 전문가들은 선진국들이 코로나가 걷힌 후 기저효과를 얻게 되는 반면 코로나 시기 비교적 선방했던 아시아 신흥국들이 상대적으로 부진할 것이란 관측도 내놓았다. 지금 산업 구조적 한계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면 포스트 코로나 때 한겨울의 베짱이 꼴이 될지도 모른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국내 기업의 비계열사 결합 동향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다행히도 많은 기업들이 지난해 구조변화를 꾀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작년 기업결합 건수가 증가했다. 금액은 감소했지만 외국기업을 제외하고 국내기업에 의한 기업결합으로 압축하면 금액도 늘었다.
다만 기계 금속과 석유화학 등 전통적인 제조업 분야의 기업결합은 수년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해 정작 변화가 필요한 기업들이 안주했던 게 아닌지 걱정된다. 기업결합 사례는 정보통신, 방송, 도소매, 유통 등 서비스업 분야에서 크게 증가했다. 미래 준비에 역동적인 IT산업 외에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서비스 업종이 불가피하게 구조조정한 듯 보인다.
그나마 수평이나 수직결합보다 혼합결합 형태가 많아 새로운 사업분야를 중심으로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려 한 시도가 감지됐다. 또 계열사간 결합보다 비계열사와의 결합이 대다수를 차지해 역시 신사업 영역으로의 진출이 활발했던 것으로 비친다.
다른 한쪽의 부정적 측면은 자사주가 늘어난 것이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코로나 시기에 정부가 시장안정화 조치 일환으로 자사주 취득 한도를 낮춰줬다. 이로 인해 지난해 기업의 자사주 취득이 전례 없이 증가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자사주 취득은 주가 방어에 효과가 있으나 단기적 처방을 위해 장기 성장이 희생될 수 있는 우려가 있다. 자사주를 재처분하면 주가부양도 한시적 효과에 그칠뿐더러 기업의 장기 성장에 필요한 연구개발이나 시설투자, 고용을 기회비용으로 사용한 면도 있다.
지난해 말 공정거래법과 상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자사주 활용 규제 법안은 무위에 그쳤다. 이에 따라 최대주주와 특별관계자가 늘어난 자사주를 사적으로 이용할 우려도 생긴다. 눈앞의 이익만 보고 기업이 성장할 투자시기를 놓친 게 아닌지 지금이라도 돌이켜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