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정 큐레이터의 #위드아트] 향유하는 삶, 은닉하는 삶

2021-03-04     매일일보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소장품이 문화계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고인의 미술품 컬렉션에는 국보급 서화·도자기는 물론이고 피카소, 모네, 알베르토, 이중섭, 김환기, 이우환 등 국내외를 망라한 근현대 거장들의 작품들이 즐비하다. 문화예술단체들이 상속세 물납제를 호소해야할 만큼 귀중한 작품들이다. 고인이 갑작스럽게 쓰러지며 이 귀중한 소장품들의 미래가 불투명해진 게 너무나 아쉽기만 하다.  해외의 경우, 재벌 개인의 관심사나 취미생활이 자선사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미술품 수집이 많다. 그래서 재벌 개인이나 기업에서 사둔 미술품은 투자 목적이 있기도 하지만 향후 미술관에 기증하거나 미술관을 설립하는 과정을 밟는 경우가 흔하다.  “부자가 재산을 남기고 죽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라는 명언을 남길 정도로 자선사업에 몰두했던 앤드류 카네기는 각종 문화예술 분야에 거액을 쾌척했고, 카네기와 경쟁적으로 예술을 수집했던 철강 재벌 헨리 클레이 프릭은 뉴욕 맨해튼에 ‘프릭 컬렉션’을 설립했다.  또 금융 재벌이었던 J. P. 모건은 자신이 수집한 작품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모두 기증했으며, 석유 재벌인 제이 폴 게티는 로스앤젤레스에 ‘게티 미술관’을 만들어 사회에 환원했다. 뿐만 아니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문화적 자존심인 ‘칼스버그 미술관’은 맥주 재벌 J. C. 야콥슨과 아들 카를 야콥슨이 설립 주역이다.  이들 모두는 자신들의 소장품이 대중들과 함께 하며 문화예술의 자양분이 되기를 원했다. 자신들이 일궈온 기업이 속한 지역, 혹은 자신이 태어난 고향의 주민들에게 질 높은 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선물한 것이다. 그리고 그곳을 찾는 대중들은 예술품과 함께 그들을 기억한다. 향유하는 삶이란 무릇 이런 것이다.  반면 미술품이 재산 은닉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다. 유감스럽게도 재벌들의 재산 은닉 포트폴리오에 미술품이 빠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 사건은 이런 현실을 재확인했다. 최 전 회장이 40억원에 가까운 세금을 체납하자 서울시가 자택에 대한 전격적인 수색에 나섰는데, 이 과정에서 고가의 미술품들이 압류되었다. 서울시가 추정한 미술품 한 점당 시가로 5000만원에서 1억원 안팎이다. 이러니 미술품하면 재벌들의 은닉 수단이라는 어두운 이미지부터 상기되어 안타깝다.   예술작품은 재산 은닉의 수단일 때는 5000만원이니 1억원이니 하는 숫자에 그친다. 하지만 자신과 대중이 향유할 때 숫자를 뛰어넘는 가치를 지닌다. 이제 우리도 미술품을 향유하는 시대가 활짝 열리기를 바란다.
아트에이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