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정 큐레이터의 #위드아트] 고난의 문화계에 모처럼 훈풍

2021-03-11     매일일보
요새 주말이면 백화점과 아웃렛에 인파가 몰린다고 한다. 어느 매장은 1시간 이상 대기해야 간신히 입장할 수 있다니 코로나 시국을 감안하면 흔한 일은 아니다. 완연한 봄기운이 느껴지는 날씨 때문인가 했더니 언론 보도에서는 ‘보복소비’라는 말이 나온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너무 오랫동안 억눌렸던 소비심리가 더 참지 못하고 폭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동안 비대면 소비, 즉 온라인 쇼핑이 폭증했다고 하는데, 온라인 쇼핑으로는 해소될 수 없는 욕구가 사람들에게 내재해 있었던 셈이다. 여전히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자영업자들에게는 딴 세상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보복소비가 실물경제 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니 보복소비의 온기가 골목 구석구석까지 전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반가운 소식은 보복소비 현상이 미술시장에서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주말까지 닷새간 코엑스에서 열린 ‘아트페어 2021 화랑미술제’는 역대 최다 방문객 수를 기록하며 성황을 이뤘다. 지난해와 비교해 관객 수는 3배, 작품 판매액은 2배를 웃돌았다. 주최 측인 한국화랑협회는 작년 가을 키아프(KIAF) 불발로 인한 아쉬움을 씻어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다. 서울옥션이 개최한 올해 첫 메이저 경매의 낙찰률은 90.4%를 기록했고, 곧 열리는 케이옥션은 최근 10년 내 최대 규모의 경매 위탁품을 올릴 예정이다. 2005~2007년 반짝 상승을 보였던 시기를 빼고는 한국 미술시장에서 이번처럼 호황 조짐이 보이는 시기는 없었던 것 같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2030세대 젊은 컬렉터의 유입도 많아졌다. 또 주식 하락장세와 부동산 규제로 인해 갈 곳을 잃은 자금이 미술품 시장에서 새로운 투자 포트폴리오를 찾은 것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특히 이젠 미술품도 금과 유사하게 안전자산이 될 수 있다는 인식 변화가 두드러진다. 최근에는 상속세를 문화재나 미술품으로 납부 가능하게 하는 물납제도 도입 논의도 본격화되고 있다. 문화계에서는 한국메세나협회, 한국고미술협회, 한국미술협회, 한국화랑협회 등이 연일 목소리를 내고 있고, 기획재정부는 미술품 물납제 도입을 골자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남긴 문화재와 미술품 컬렉션이 해외로 팔려나갈 경우 문화적 손실이라는 공감대가 확산된 결과다. 코로나로 인해 고난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문화계에 모처럼 훈풍이 불고 있다. 정부가 주마가편의 도움을 주길 기대해본다.
아트에이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