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메시지’로 ‘보궐선거’와 ‘탄소배출 감소’ 강조한 한교총
기독교 최대 절기인 부활절을 정치적 수단으로 전락시켜
한교총 ‘기독교 연합단체’ 정체성 자각 못한 모습 드러내
2022-03-30 송상원 기자
[매일일보 송상원 기자] 한 번 가정해보자. 정부가 3.1절에 기념사를 발표하며 뜬금없이 4월에 있을 보궐선거와 공직자들의 땅 투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탄소배출 감소를 통해 독립운동가들이 지킨 정신을 이어가자고 하면 무슨 생각이 들겠는가?
때와 장소를 구분 못하고 독립운동과 상관없는 엉뚱한 말을 하는 것에 우선 황당함을 느낄 것이고 두 번째로는 ‘독립운동’이 ‘보궐선거’와 ‘공직자들의 땅 투기’ 및 ‘탄소배출 감소’와 비교될만한 무게감인가 하는 당황스러움이 들 것이다.
믿기 힘들지만 이와 비슷한 상황의 일이 최근 기독교계에서 일어났다. 한국기독교계를 대표한다고 자처하는 한국교회총연합(공동대표회장 소강석 목사·장종현 목사·이철 감독, 이하 한교총)이 지난 29일 부활절 메시지를 발표했는데 대부분의 내용이 부활절과 상관없는 것들이었다.
부활절 메시지 임에도 불구하고 ‘공직자들의 땅 투기’와 ‘보궐선거’ 및 ‘탄소배출 감소’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 한교총이 일반사회단체인지, 정치단체인지, 아니면 환경단체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기독교계가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정치적으로 바른 목소리를 내며 시대의 선지자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이전의 한국교회가 잘못된 정권에 저항하며 ‘정의’와 ‘공의’를 외쳤듯이 말이다.
만약 한교총이 ‘공직자들의 땅 투기’ 및 ‘보궐선거’와 관련해 별도로 기자회견을 열고 올바른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주장을 펴며 강력한 대책을 촉구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면 좋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한교총은 그렇게 하지 않고 부활절 메시지 속에 엉뚱한 내용을 담았다. 한교총의 부활절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기쁨과 그 의미 및 전 인류 구원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 것이 아니라 한국의 문제와 정치적 상황 및 환경 문제에 포커스를 맞췄다.
이는 부활절 메시지 발표를 빙자해 부활절과 상관없는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며 기독교계 최대 절기인 부활절을 한낱 정치적 수단으로 전락시킨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한교총 공동대표회장이자 법인 및 고유번호증 상의 법적 단독 대표인 소강석 목사(예장합동 총회장, 새에덴교회)에게 전화해 왜 이런 부활절 메시지를 발표했는지 물었다. 그러자 소강석 목사는 한교총 측에서 부활절 메시지를 내겠다고 내용을 보내왔는데 자신이 바쁜 상황이라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허락했다고 답했다.
기독교 최대 절기이자 신학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메시지보다 어떤 일이 그렇게 중요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는 대표회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해야 할 문제다. 한교총이 부활절을 정치적 수단으로 전락시킨 것은 물론 기독교 연합단체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