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이재영 기자] 과거 B2B(기업간 거래) 기업은 마케팅에 거의 신경쓰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기업의 사회공헌은 거의 자원봉사나 도덕책을 들여다보는 원론적인 수준으로 회사의 매출이나 사업성과 연결하는 인식은 적었다.
요즘은 다르다. 지속가능보고서를 비롯해 기업의 ESG(환경, 사회책임, 지배구조) 노력과 성과를 홍보하는 자료들을 쏟아낸다. 기업들이 이처럼 이미지 제고에 힘쓰는 배경은 흔히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추기 위해서라고 설명된다. 국제 금융 규제선에서 ESG 기준에 미달하는 기업은 글로벌 영업이 어렵다는 게 대충 그 속에 함축된 의미다.
그래도 잘 이해되지 않는다. 주식시장의 흐름을 보면 비로소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있다. 소위 동학개미 붐으로 소비자(참여자)가 늘어난 주식시장은 기업들의 주요 자금 조달처로 자리잡았다. 코로나발 경기부양책에 따른 넘치는 유동성이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어갔으며 그 자금이 다시 기업들에게 조달됐다.
4차 산업혁명이나 디지털혁신 등 산업구조가 바뀌는데 대응해 신사업을 확장해온 기업들은 여느 때보다 투자액이 커진 만큼 주식시장에 대한 유인도 커졌다. 비상장사의 기업공개 등 공모주 시장이 활성화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모주 시장에서 활약하는 바이오의약품 분야도 B2B다. 이들 B2B 기업은 기업공개를 통해 전과 달리 소비자 접점이 커진 셈이다. 주식시장에서의 소비자 평가에 민감해졌다.
기업들의 대출, 상환 구조를 고려하면 주식시장 민감도가 어느정도 커졌는지 유추된다. 기업들은 대출한 돈을 다시 빌려서 갚는다. 사채 발행 용도를 보면 주로 상환 목적이 많다. 따라서 주식시장에서 한번 돈을 빌린 기업은 사업을 지속하는 한 계속 주식시장에 얽매이게 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기업집단 내 상장회사 수가 가장 많은 SK가 사회적기업 등 ESG 활동량이 많은 것도 이해된다.
ESG는 역설적으로 분식회계나 횡령, 배임, 지배주주에 유리한 분할, 합병 등 주가를 폭락시키는 대기업집단의 리스크가 빈번함에 따라 시장의 관심을 얻게 됐다. 일반 소액주주 입장에서 주식 투자의 위험을 낮추기 위해 그런 분쟁소지가 없는지 살펴야 하고, 노출이 적은 B2B 기업일수록 그나마 ESG가 참고할 만한 자료가 됐다.
주식시장에서 상품화된 B2B 기업은 ESG를 통해 주주를 설득해야 한다. 새로 발행한 사채가 흥행에 실패하면 전에 발행한 사채에 대한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기업들은 사채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시장에서 계속 양질의 주식상품으로 인식될 필요가 있다. 그 얼마 안되는 수단 중 하나가 ESG라고 생각하면 주식 붐 이후 B2B 기업의 이미지 마케팅이 활발해진 데도 납득이 간다.
지난 6일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ESG 평가 대상 기업 중 18개사의 등급을 하향 조정했다고 발표했다. 하향 이유를 보면 SK이노베이션의 경우 경쟁사 영업비밀 침해 등 아직 분쟁의 최종 결론이 나지 않은 쟁점사안도 있으나 한국조선해양 등 반복적인 근로자 사망사고 발생 같은 확정 사유도 있었다.
B2C 기업에서 상품에 사망사고가 연결되면 소비자 후폭풍은 치명적이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 B2B 기업들이 ESG 등 소비자 평가에 신경쓴다면 사망사고가 반복되는 실책은 절대적으로 방지해야 한다. B2C기업 마케팅 기법 중 중요도 일순위로 꼽히는 고객만족경영은 B2B 기업들에게도 통용된다. 학술적으로 고객만족경영은 회사의 본질적 변화를 수반하는 리엔지니어링 경영 기법을 통해 이뤄진다고 한다. B2B 기업들이 ESG 경영으로 고객만족을 얻으려면 근본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