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총회장 “눈물겨운 교단 역사 기억하며 총회 미래 세워가야”
예장합동 ‘공적연구발표세미나’ 갖고 교단 위해 헌신한 인물들 조명
정성구 박사, 김남식 박사, 한기승 교수, 소재열 박사 발제
교단 위상 높인 인사에게 총회에서 훈장 수여 예정
2022-04-17 송상원 기자
[매일일보 송상원 기자] 예장합동(총회장 소강석 목사) 교단은 16일 경기도 용인 새에덴교회(담임목사 소강석)에서 ‘공적연구발표세미나’를 가졌다.
예장합동 제105회총회기념사업특별위원회(총회훈장상훈위원회)와 총회역사위원회가 공동주최한 이번 세미나는 교단 발전을 위해 헌신한 지도자들을 조명하고 공적을 기리며 그 정신을 이어가기 위한 목적으로 개최한 것이다.
세미나에서 소강석 총회장은 “토인비는 한 민족이나 국가를 망하게 하려면 역사를 지워버리면 된다고 했다. 고난과 수치를 망각한 민족은 똑같은 비극을 반복하고 망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서의 수치의 역사를 기억하며 살아간다”면서 “우리 교단도 목사와 장로들이 교단의 역사를 모르면 결국 교조적인 교단이 될 수밖에 없다. 교단의 역사를 아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소 총회장은 “우리 교단은 제44차 총회에서 WCC가입 문제로 충돌해 순혈적 보수 신학을 지키기 위해 분리돼 나왔다. 적통성을 가졌음에도 허허벌판으로 나와 총회 회관과 총신대 및 세계 최대 장로교단을 세운 눈물겨운 역사를 이뤄냈다”면서 “이런 역사를 기억하고 공을 세운 분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총회의 미래를 성공적으로 세워갈 수 있다”고 했다.
세미나에는 이상웅 교수(총신대 신학대학원), 김호욱 교수(광신대 역사신학), 정성구 박사(총신대 명예교수), 신종철 교수(아세아연합신학대 역사신학), 김병희 교수(대신대 역사신학), 박성규 목사(총신대 초빙교수, 부산 부전교회 담임목사), 윤희원 목사(전주효성교회), 장영학 목사(한국교회역사자료박물관 관장), 김남식 박사(한국장로교사학회 회장), 한기승 목사(광신대 강의전담 교수, 광주중앙교회 담임목사), 소재열 박사(한국교회법연구소장), 박창식 목사(대신대 객원교수) 등이 발제자로 참여했다.
이들은 △죽산 박형룡과 예장총회 △해원 정규오 목사의 공적 연구 △목은 명신홍 박사와 총회의 전통 △김윤찬 목사와 교단의 발전 △이영수 목사와 예장총회 △백남조 장로와 총신의 발전 △박종삼 목사의 생애와 51인 신앙동지회 △정암 박윤선 박사와 총신 △청암 이환수 목사의 생애와 사역 △이대영 목사의 생애와 복음사역 △박찬목 목사의 생애와 총회 사역 △차남진 박사의 교수사역과 눈물의 전도자 △임승원 목사와 총회의 교육 △51인 신앙동지회의 신학적 정체성과 성격 △실업인 신앙동지회의 헌신 △승동교회의 장로회 정통성 계승 고찰 등을 주제로 발제했다.
죽산 박형룡 박사에 대해 발제한 이상웅 교수는 “죽산은 일제의 박해 아래서도 만주 봉천신학원 교수로서 교역자 양성에 힘을 쏟았고 해방 이후 고려신학교 교장으로 취임했다. 1948년에는 전국적인 신학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남산에 장로회신학교를 설립하고 평양 장로회신학교의 신학적 계승을 만천하에 공표하기도 했다. 죽산은 1972년 퇴임하기까지 24년간 장로교 교역자들 양성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평했다.
이어 이 교수는 “죽산이 소천한지 43년이 지나가는 이 시점에서 교단 상황을 조망해볼 때에도 여전히 죽산이 전수해준 청교도 개혁주의 혹은 정통 개혁주의 신학의 중요성은 교단 목회자들에 의해서 공명을 얻고 있다고 보여진다”면서 “죽산 박형룡의 신학적인 기여는 생시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교단 신학의 정체성이나 내용을 따져 물을 때에 여전히 지로적(指路的)인 기능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산의 신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과 자세한 연구는 아직 부진하지 않은가 하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기장에서 장공 김재준을 기리고 연구하고, 장신에서 한경직을 중시하고 연구하듯, 우리 예장합동에서도 교단 신학의 정초자인 죽산의 신학과 앞세대 신학자들에 대한 연구 작업이 활성화될 수 있길 소망한다”고 했다.
‘백남조 장로와 총신의 발전’이라는 주제로 발제한 박성규 목사는 백 장로가 헌신한 일들을 살펴보며 이 시대에 또 다른 백남조가 나오길 기원했다.
박 목사는 “백남조 장로는 박형룡 박사의 교의신학 전집 최초 발간에 큰 헌신을 했고 부전교회를 넘어 부산 교계를 위해서도 열심히 일했다. 특히 백 장로는 총신대 사당동 캠퍼스 부지를 바쳤고 총신대 초대 이사장으로서 학교의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면서 “그는 절망을 모르는 불굴의 신앙을 가진 신실한 예배자이자 물질의 청지기 정신을 갖추고 있는 인사였다. 그리고 교회와 목회자를 존중한 사람이었다. 백남조 장로처럼 총회와 총신을 위해 사욕 없이 헌신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인물이 많이 나오길 바란다”고 했다.
한기승 교수는 발제를 통해 차남진 박사를 조명했다. 한 교수는 “차남진은 신사참배 반대로 8개월간 수감생활을 했고 이후 1945년 조선신학교에 입학해 51회 신앙동지회의 연구부장으로 활동하며 조선신학교가 정통주의 신학교육을 하도록 요구하는 진정서를 총회에 넣는데 참여했다”면서 “이후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컬럼비아신학교에서 신학석사, 밥죤스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 취득 후 귀국해 CCC 총무로 사역 중 정규오, 문제구 목사 등의 권유로 1961년부터 총회 신학교 전임강사를 했다. 그의 교수 사역의 특징은 성경을 강조하는데 있었으며 심지어 ‘성경 한 권이면 세계를 정복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고 했다.
한 교수는 차남진 박사의 교수 사역이 당시 총회신학교 발전에 큰 힘이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차남진의 총회신학교 교수 사역은 10년이 채 안 되지만 이때는 장로교회의 3차 분열 직후로 대다수의 교수와 선교사들이 에큐메니칼을 지지하며 통합 측으로 이탈한 시기였다. 당시 합동 측은 교수 한 사람이 그리운 시절이었다”면서 “그때 미국 보수주의 신학교에서 학위를 취득한 차남진이 교수로 보강되면서 학교와 학생들이 얻은 힘은 실로 컸다고 할 수 있다. 차남진은 총회신학교가 가장 어려운 시기에 학교의 발전과 신학적 정초를 놓는 일에 헌신했던 것”이라고 했다.
이외에도 한 교수는 차남진 박사의 부흥사 활동과 사형수들을 전도한 일화 및 제1호 미주선교사로서의 사역 등을 살펴보며 “차남진은 과히 천재요 기인에 가까우리만큼 타고난 재능의 소유자”라고 평했다.
한 교수는 “그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은 차남진이 탁월한 설교자이자 부흥사였다고 말한다”면서 “대체로 보수주의 신학자들에게 부족한 것이 사회 참여인데 차남진이 희대의 살인마 고재봉을 찾아가 전도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는 사회 참여와 신학이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차남진 박사야말로 신학자인 동시에 최초의 사회적 활동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고영기 총무는 축사를 하며 총회 발전을 위해 헌신한 인사를 기리는 일이 계속해서 이어지길 기원했다. 고 총무는 “오늘 발제 대상이 된 분들은 굉장히 귀한 분들이다. 이들처럼 하나님 마음에 합한 이들이 많이 세워지면 좋겠다”면서 “우리 총회가 공을 세운 분들에게 훈장을 주는 일을 단회적으로 끝내지 말고 이 선한 일을 제106회기와 107회기에도 이어가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