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한 변신과 작품을 향한 헌신’…‘생계형 배우’에서 오스카 수상까지

1966년 TBC 3기 공채로 출발…영화 데뷔 50년 맞아 인연 맺은 감독들과 의리…나이들수록 젊은 창작진 손잡아

2021-04-26     최재원 기자
한국의

[매일일보 최재원 기자] 영화 데뷔 50년을 맞은 74세의 배우 윤여정이 한국 배우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오스카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나이를 무색하게 할 만큼 과감한 변신과 작품을 향한 헌신을 펼치면서 좋은 인연을 맺은 후배 감독들과의 의리가 바탕이 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는 70대 중반의 나이에 미국 독립영화에 출연하며 한국 배우 최초의 아카데미 연기상 수상이라는 새 역사를 썼다.

1966년 T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윤여정은 한양대 재학 중 등록금을 벌기 위해 방송국에서 아르바이트하다가 탤런트 시험을 보라는 제안을 받고 연예계에 입문했다.

이후 배우 윤여정은 1971∼1972년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다. 그에게 여우주연상과 신인상 등을 안긴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화녀’와 ‘충녀’는 물론, 드라마 ‘장희빈’으로 인기와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가수 조영남과의 결혼과 미국행을 선택하면서 공백기를 가진 배우 윤여정은 13년 만에 이혼한 뒤 홀로 두 아들을 양육하기 위해 연예계에 복귀해 TV 드라마에서 크고 작은 역할을 가리지 않고 억척스럽게 연기했다.

윤여정은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그 시절을 “나는 배고파서 연기했는데 남들은 극찬하더라. 그래서 예술은 잔인하다. 배우는 돈이 필요할 때 연기를 가장 잘한다”고 회고했다.

영화로는 김수현 작가가 쓴 ‘에미’(1985)에 출연하긴 했지만, 본격적인 복귀는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2003)이 시작이었다.

투병 중인 남편을 두고 공개적으로 불륜을 선언하는 시어머니 역을 다른 여러 배우들이 거절했지만 “집수리 비용이 필요하다”며 선뜻 나섰고, 그간의 공백기가 무색할 만큼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찬사를 받았다.

이 영화로 임 감독과는 ‘그때 그 사람들’(2005) ‘오래된 정원’(2006), ‘하녀’(2010), ‘돈의 맛’(2012), ‘헤븐:행복의 나라로’(2021)까지 크고 작은 역할들로 작품을 함께 했다.

홍상수 감독의 작품에도 ‘하하하’(2009), ‘다른 나라에서’(2011), ‘자유의 언덕’(2014),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 등 여러 편에 출연했다.

두 감독의 작품으로 동시에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받기도 했다. 2010년에는 임상수 감독의 ‘하녀’와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로, 2012년에는 다시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과 홍상수 감독의 ‘다른 나라에서’로 영화제를 찾았다.

해를 거르지 않고 출연하며 오래 활동해 온 TV 드라마에서는 김수현, 노희경, 인정옥 등 독보적인 작가들과 호흡을 맞추며 빛을 발했던 그는 나이를 먹을수록 젊은 창작자들과 손을 잡았다.

영화 ‘미나리’ 역시 “교포 2세들이 만드는 작은 영화에 힘들지만 보람 있게 참가했다”고 했지만, 이 영화로 마침내 오스카를 품에 안았다. 그는 “독립영화라 고생할 게 뻔해서 하기 싫었다”면서도 “정이삭 감독과는 다시 한 번 하고 싶다”며 애정과 신뢰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