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남이웅 유물 유형문화재 지정

나성동 석조여래입상·갈운리 석장승 등 2점 지정 예고

2021-04-30     이현승 기자
남이웅
[매일일보 이현승 기자] 문화재는 역사를 파악하는 귀중한 자료로 학술적 가치도 높다. 세종특별자치시(시장 이춘희)가 30일 ‘남이웅 유물 일괄’을 유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하고, 나성동 석조여래입상과 갈운리 석장승 등 2점의 유형문화재를 지정 예고했다. 이번에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남이웅 유물 일괄은 진무공신교서와 교서함, 불윤비답, 사패교지, 고신교지, 병인수로조천시 등 총 10점이다. 남이웅(1575∼1648)은 인조반정과 이괄의 난, 병자호란 등 17세기의 역사적 사건과 관계가 깊은 인물로 조선 중기 대표적인 문인이다. 진무공신교서는 조선 인조 때 이괄의 난을 평정한 공이 있는 32명에게 내린 교서로 1625년 제작됐다. 이 교서는 이괄의 난과 당시 인물 연구에 귀중한 사료로 학술적 가치가 있고, 조선 왕실 공예품으로서 재료와 기술적 특징, 장황(粧䌙)의 형태까지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진무공신교서의 바탕이 되는 명주는 왕실에서 초상화나 교서용으로 특수 제작한 생초(生綃)를 사용했으며, 제작 당시 교서의 수급자명, 본문, 등위별 공신의 명단, 발급일자와 ‘시명지보(施命之寶)’라는 국새를 찍어 왕실 문서로서 완전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불윤비답(不允批答)은 신병을 이유로 사직·휴직·휴가를 청원하는 문서인 정사(呈辭)에 대한 답신으로, 누워서라도 정사를 보라고 할 정도로 인조가 남이웅을 신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자료다. 인조실록에 따르면 남이웅이 병으로 28번이나 정사(呈辭)하니 인조가 허락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현재 5점이 남아 있다. 이번에 유형문화재로 지정 예고된 불윤비답은 크기도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크고, 보존상태도 매우 양호한 편으로 역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사패교지는 이괄의 난 이후 공신들에게 임금이 노비 등을 내려주는 사패(賜牌)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자료다. 고신교지는 인조 26년 남이웅을 좌의정 및 왕세자의 교육을 맡는 세자부(世子傅)로 삼았다는 인조실록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자료다. 병인수로조천시는 1626년(인조 4년) 중국 사행을 수로로 다녀올 시에 거치는 육로의 노정과 지명을 알 수 있는 자료이며, 친구들이 써준 송별시가 수록되어 있어 남이웅의 교류관계를 알 수 있는 자료다. 이와 함께 이날 유형문화재로 지정 예고된 ‘나성동 석조여래입상’은 얼굴이 크고 어깨가 좁은 비례로 볼 때 고려시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나성동 석조여래입상은 일부 훼손되고 한국전쟁 당시 대평리 전투로 인한 총탄의 흔적 등이 남아 있으나, 백제시대부터 주요 교통로였던 나리재에 조성된 대형의 불상으로 역사적 가치가 인정된다. 이날 같이 지정 예고된 ‘갈운리 석장승’은 행정중심복합도시 조성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 갈운리 마을의 미륵불 2기로, 조각수법을 살펴볼 때 불상이 아닌 장승으로 판단된다. 석장승 명문 중 ‘시주별장김진기(施主別將金辰己)’란 글자가 판독되는데, 이는 승정원일기 1248책(탈초본 70책), 영조41년(1765) 10월 2일 기록에서 확인되는 ‘충청도천안군승호김진기(忠淸道天安郡陞戶金辰己)’와 동일인물로 석장승이 18세기 중반에 조성된 것을 알 수 있다. 갈운리 석장승은 조성시기와 시주자의 명문이 확인되고 있는 등 국내에서 보기 드문 사례로 학술적 가치와 희소성이 높은 것으로 인정됐다. 시는 다음달 1일까지 ‘나성리 석조여래입상과’과 ‘갈운리 석장승’에 대한 각계의 의견을 수렴, 검토하고 차기 문화재위원회에서 지정 여부를 최종 결정할 방침이다. 세종시 관광문화재과 이현구 과장은 “앞으로도 개발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있거나 개인·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문화유산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지정·보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