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이재영 기자] MZ세대의 연봉 인상 요구는 부동산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대기업에 취직하면 노후 걱정이 없다는 인식이 강했다. 좋은 대학을 나와서 대기업에 취직하는 게 안정적이고 풍족한 인생을 보장해주는 것 같았다.
지금은 다르다. 퇴직연령은 낮아졌으며 노후는 길어졌다. 첫 직장이 평생직장이 될 수 없다. 그 와중에 부동산 가치는 수억원씩 달라진다. 매달 받는 월급만으로 날고뛰는 재테크족을 따라잡을 수 없다. 이는 곧 계층 하락에 대한 공포감을 일으킨다. 그런 불안과 불만이 연봉 인상 요구의 저변에 깔려 있다.
근본적으로는 기업에 대한 인식변화가 엿보인다. 과거 대기업과 재벌그룹 인사 분위기를 떠올리면 지금 직원이 회장에게 직접 연봉을 운운하는 장면은 매우 신선하다. 마치 왕과 왕실귀족(임원), 노동층(직원) 같았던 재벌그룹 상하관계에선 벌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기업은 평생직장이었으며 그곳의 회장은 인사권을 쥔 상관조차 접하기 힘든 군대로 치면 사단장 같은 존재였다. 이런 수직적 관계를 개선하고자 그룹 내부에서도 직급체계를 달리하는 등 분위기를 바꾸는 노력을 했으며 최근 시대 변화와 부동산이 맞물려 봉건체제가 붕괴된 게 아닌가 싶다.
평생직장이 아닌 대기업 직원은 언제든 이직을 준비하며 머무르는 동안은 마땅한 대가를 요구할 수 있다. 그게 아니면 본인만 손해다. 기업이 회장만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인식도 비슷한 이유에서 커졌을 것이다. 직원이 실적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도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문제가 됐다. 이직에 대한 자신감이 충만하고 회사에서 잘릴 걱정보다 자존감을 지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MZ세대에게 가능한 일이다. 더 이상 그룹 회장은 직원의 생사여탈권을 손에 쥔 존재가 아니게 됐다.
이는 비단 대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확장하면 기업과 국가의 관계도 과거와 달라진 시각에서 바라봐야 할 것 같다. 지금 대기업의 성장 원천이 된 적산불하와 친기업정책 등을 이유로 기업은 국가와 국민에 의무처럼 봉사해야 하는 존재로 인식돼왔다. 하지만 재벌 회장이 직원의 열정페이를 강요할 수 없듯이 국가도 기업에 애국심을 강제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
실상 대기업은 국가의 경계가 약해졌다. 미국에선 현지 공장을 짓는 타국 기업에 대해서도 자국기업처럼 대한다고 한다. 미국 차량용 반도체 수급 문제를 두고 바이든 대통령이 삼성전자를 소환했을 때 우리 국민은 왜 남의 나라 기업을 두고 저러냐는 불만이 없지 않았지만 미국에선 역내 공장을 가진 기업에 대해 로컬기업처럼 대하는 인식이 있다고 한다.
국내 기업들이 상장할 때는 애국심에 기대어 국내 증시 상장을 정부로부터 권유받는다고 하지만 미국 증시 상장 시도가 많아진 게 현실이다. 미국 자본을 당겨서 쓰고 미국 내 공장을 두고 미국민을 직원으로 고용하는 기업체의 정체성을 고려하면 애국심만 강요하는 것은 꼰대같은 발상이다. 삼성전자가 더 이상 회장 개인 소유가 아니듯 회사의 결정과 판단은 수많은 구성원에서 나온다. 구성원엔 타국 직원도 많다. 국가는 회장 한사람에게 사업보국을 강요할 게 아니라 삼성전자 주주들과 구성원 모두를 설득해야 한다. 미국은 로컬기업처럼 대우하면서 그만한 혜택도 제공한다고 한다. 문재인정부도 뒤늦게 반도체 투자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약속했다. 실적이 좋은 기업들에게 단순 증세만을 강조할 게 아니라 사회환원을 유도할 스마트한 방법을 국가도 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