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강제징용 피해자 손배소 각하
“소송으로 개개인 청구권 행사 불가하다”
피해자 측 “한국 판사, 한국 법원 맞는지”
2022-06-07 최재원 기자
[매일일보 최재원 기자]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제기한 최대 규모의 소송을 국내 법원이 각하했다.
2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김양호 부장판사)는 강제징용 노동자‧유족 85명이 일본제철·닛산화학·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16개 기업을 상대로 낸 소송의 선고공판에서 각하를 결정했다.
재판부는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개개인의 청구권이 소멸되거나 포기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소송으로 이를 행사할 수는 없다”며 “원고들의 청구를 인용하는 본안 판결이 확정되고 강제집행까지 이뤄지면 국가 안전보장과 질서유지라는 헌법상 대원칙을 침해하는 것으로 권리남용에 해당해 허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각하는 법원이 소송·청구의 부적합 또는 요건 미충족 등의 이유로 재판을 심리하지 않고 바로 끝내는 결정이다. 본안 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법리적 해석이 있지만,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피해자 측 패소’로 볼 수 있다.
피해자 측은 즉각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피해자 소송대리인인 강길 변호사는 판결 직후 취재진에게 “오늘 판결은 기존 대법원 판례에 정반대로 배치돼 매우 부당하다”며 “청구권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논리적으로 심판 대상으로 적격이 있다는 것인데, 재판부가 양국 간 예민한 사안이라 다르게 판단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강제징용 당사자와 유족을 포함한 피해자들 역시 “한국 판사와 한국 법원이 맞는지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라”며 “국민을 보호하지 않는 국가와 정부는 필요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소송은 그간 제기된 강제징용 피해보상 청구 중 가장 규모가 컸다. 피해자들은 17개의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가 1개 기업에 대해서는 소송을 취하했으며, 2015년 16개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했다.
일본 기업들은 수년 동안 소송에 응하지 않았고, 6년 사이 소송에 동참한 피해자 중 10여 명이 세상을 떠났다. 이후 지난 3월 공시송달이 이뤄지며 일본 기업들은 국내 변호사들을 대리인으로 선임해 지난달 28일 1차 변론기일에 나섰다.
당초 재판부는 오는 10일 선고공판을 열 예정이었지만 “이미 두 차례 대법원의 판단을 받았던 사건으로 법리가 다 정리됐다”며 선고를 앞당기겠다고 이날 오전 양측에 통보했다. 피해자 측에서는 선고를 늦춰주거나 추가 변론기일을 지정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소송이 오랜 시간 지연됐다며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외에도 피해자 측 소송대리인은 재판부에 국가기록원이 보관하고 있는 문서를 확보하기 위한 문서송부 촉탁을 신청하겠다고 밝혔으나 재판부는 이를 거부했다.
한편 지난 2018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일본제철(옛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를 받아들여 1인당 1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당시의 판례에 따라 이번 소송 역시 원고인 피해자 측 승소로 마무리될 것이라고 예상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