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성추행 피해만으로도 참으로 견디기 힘겨웠을 공군 이모 중사를 더욱 막막한 고립감에 빠뜨려 극단적 선택으로 죽음에 이르게까지 몰아간 군(軍)의 조직적 사건 은폐와 부실 수사가 속속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 6일 현충일 추념식 참석 뒤 이 중사의 추모소를 찾아 “국가가 지켜주지 못해 죄송하다”며 유족에게 사과하고, ‘철저한 조사’약속과 함께 서욱 국방부장관에게 “철저한 조사뿐 아니라 병영문화가 달라지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지난 4일자로 사건책임을 물어 이성용 공군참모총장을 경질한 문 대통령이 엄정한 수사와 처벌 그리고 확실한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거듭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 한해만도 군(軍)내 성범죄 사건은 180여 건이나 발생했다. 이는 피해자 신고나 군 사법기관의 적발 건수로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군 조직 특성상 드러나지 않은 성범죄는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것이 우리사회의 지배적인 인식이다. 따라서 사건의 진상조사와 철저한 규명, 책임자 처벌, 병영문화 개선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시급한 일은 군(軍) 사법체계 개혁이다. 군 성범죄가 근절되지 않는 배경에는 조직적으로 은폐하고 감추려는 군의 고질적 병폐인 ‘닫힌 문화’의 이면에 군 수사기관과 군사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 식 수사관행과 솜방망이 판결이 자리하고 있음은 오래전부터 지적돼온 공지의 사실이다.
추상같이 준엄해야 할 군사법원이 민간법원보다 성범죄에 더더욱 관대한 것은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2020년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2015년부터 2020년 6월 말까지 각 군 군사법원에서 다룬 성범죄 재판 1,708건 가운데 실형 선고 사건은 10.2%인 175건으로 같은 기간 민간인들이 성범죄로 1심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비율 25.2%에 비해 무려 15%p나 낮았다. 또한 한국형사ㆍ법무정책연구원의 자료에 의하면 1심에서 14.5%였던 성범죄 비율이 2심에서는 38.4%로 증가하고, 대법원의 파기율은 군사법원이 2.5%로 일반법원 1.2%)보다 무려 2배를 웃돈다.
뿐만 아니라 군에서는 부대 지휘관이 군 검사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군사법원이 판결한 형량마저도 감경해줄 수 있는 특수한 사법체계다. 다시 말하면 군사법원이 지닌 문제의 핵심은 법원이 행정부 아래에 있게 되고, 수사와 재판이 지휘관의 선의에 의해 결정될 소지와 개연성이 큰 사법체계로, 군 내부의 비밀 보호를 명분으로 사건 자체를 덮기로 결정하고 짜 맞춘다면 막기 어려운 구조가 아닐 수 없으며, 결국 군은 사회로부터 차단되고 유리된 성역이 되어 인권유린 행위를 근본적으로 막기는 더욱더 어려워질 것이다.
현실이 이러하다보니 처음부터 제대로 된 수사와 합당한 처벌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군 수사시스템 전반에 대한 개편뿐 아니라, 「군형법」 제15장 강간과 추행의 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재점검하고, 미국 군정시절부터 군이 사회를 통치하던 시대의 유산인 군사법원의 설치와 운영은 전시나 비상계엄 선포, 국외 파병부대의 재판에 국한하는 등 사법체계 전반의 근본적인 개혁까지도 테이블에 올려 책임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한국형사ㆍ법무정책연구원의 지난해 보고서에 의하면 2019년 기준으로 보통군사법원에 접수되는 연간 사건 수는 총 2,839건인데, 군 기밀 누설, 군무이탈, 군용물 관련 죄 등 군사범죄는 228건으로 전체의 8%에 불과하다. 나머지 92%는 군인이 저지른 일반 형사범죄 이다. 항소심 격인 고등군사법원의 경우에도 연간 사건 수 443건 중 13.8%인 61건만 군사범죄였다. 따라서 성폭력처럼 군 작전과 무관한 형사사건의 경우 민간경찰에 맡기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만 한다.
또한 부대 지휘관으로부터 수사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엄중한 처벌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일선 부대에 설치된 ‘검찰부’를 각 군 참모총장 소속의 ‘검찰단’으로 개편하는 문제도 서둘러야 한다. 차제에 지난해 5월 국방부가 발의하여 국회에 계류 중인 「고등군사법원 폐지 법안」도 서둘러 처리하고, 군 수사 시스템과 군 사법체계 전반의 개혁까지도 확고한 책임감과 결연한 의지를 갖고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군 내 성폭력 사건이 터질 때마다 대책이 나왔지만 임시방편적 미봉책에 불과했다. 성폭력 사건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는 군에만 맡겨둘 수 없다. ‘미투 운동’으로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 문제에 대한 인식의 큰 변화를 가져왔음에도 군은 여전히 성폭력 사각지대로 남아 있음을 죽음을 통해 고발한 것임을 각별 유념하고, 결코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함께 나서서 이 폐쇄적인 문화를 확 바꿔 성범죄 관련 외부에 신고체계를 만드는 등 시민사회의 감시 기능이 작동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국방부가 매년 성폭력 피해 특별 신고기간을 운영하는 정도로는 실태를 파악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2년 전 스포츠계를 대상으로 했던 경험을 살려 국가인권위원회와 여성가족부의 공동주도로 여군 전수조사도 검토해볼만 하다.
결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장벽 같은 공모의 카르텔 앞에서 이 중사가 느꼈을 한없는 절망과 무력감에 아파하고 살려내지 못한 안타까움에 공분하는 마음들을 모아, ‘다시는 군 성폭력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결연하고 단호한 의지와 각오로 군 성폭력 은폐 카르텔을 깰 준엄한 방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군 인권 보호관 제도’를 신속히 도입하고, 성폭력 피해지원 매뉴얼에 적시된 ‘여성 변호사 우선배정’과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근본대책을 강구하며, ‘국방 양성평등 지원에 관한 훈령’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 ‘성추행 사각지대’논란과 함께 남성의 군 장교가 장군이 될 확률은 0.6%인 데 반해 여군 장교는 확률이 0.1%에 불과해 무려 6배 차이가 난데다 ‘여성 장성’은 군 전체를 통틀어 총 6명에 불과한 우리 군의 ‘유리천장’파괴에도 관심을 가지는 등 차제에 ‘여군 사기 진작책’도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