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탈진실의 시대, 한국 교육의 과제 (1)

심의보 충북교육학회장

2021-06-18     김광호 기자

심의보
[매일일보] 사람은 교육에 의해 사람으로 된다. 사람들이 모여 사회를 만들고, 사회는 사람들의 삶을 위해 교육을 한다. 그러면 교육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교육이라는 일에 관계 맺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자기 나름의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대답이 어떤 것이냐 하는 것은 바로 그 사람 자신의 교육관 내지는 교육철학을 나타내는 일이기도 하다 교육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일이라고 하는 좀 막연하지만 ‘이상주의적’인 대답을 할 수 있다. 아동이나 학생이 지니고 있는 소질과 가능성을 찾아내고 길러주는 일이라고 하는 소극적이지만 ‘자연주의적’인 대답을 할 수도 있다. 또는 인간의 행동을 계획적으로 변화시킴으로써 목적했던 어떠한 인간형으로 만드는 일이라고 하는 적극적이고 ‘행동과학적’인 대답을 할 수도 있다. 그 대답이 무엇이든 이 교육의 하는 일이 무엇이냐 하는 질문의 대답들 속에는 두 가지의 공통되는 요소가 숨겨져 있다. ‘인간’과 ‘교육의 기준’이 그것이다. 인간을 교육한다고 할 때, 이 두 가지 기본 요소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교육의 방법과 방향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만일, 인간을 문화와 역사를 만들고 또 그것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역사적 문화적 존재라고 한다면 교육의 기준은 문화현상이나 역사의 현상에서 얻어낼 수밖에 없다, 이와는 달리 인간을 하나의 유기체로 본다면 교육의 기준은 감각적 경험의 결과를 중요시하는 경험과학의 영역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경험과학의 대상으로서의 인간은 동물이나 마찬가지로 자극과 반응의 연속적 과정을 통하여 계획대로 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어떤 형의 인간으로 변화시키느냐의 문제가 있다. 바람직한 인간상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참여와 노력에 의해 유지‧발전된다는 점에서 민주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시민으로서의 역량을 기르는 학교교육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기후 변화,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 불평등 확대, 정치적 불안정성 등 변화하는 환경 속에 학생들이 삶과 연관된 다양한 사회 현상에 대해 판단하는 능력, 공동체 구성원으로 서로 존중하고 더불어 사는 능력, 민주적 절차를 통한 문제해결 능력 등 주권자로서 시민 역량의 중요성 역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이 지니고 있는 이와같은 문제들은 사회나 사회체제와의 관계에서 현실화되어 드러나게 마련이다. 사람들의 모임으로 사회가 이루어지고 국가가 성립되는 것이라면, 그 국가를 다스리는 정치체제가 교육과 무관할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학교 교육을 통해 학생을 사회적 현상에 대해 책임감과 적극성을 가진 참여하는 시민으로 성장시킬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물론 어떤 경우에도 정치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정치는 언제나 어떠한 방향이나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 목적이나 방향은 인간들의 이상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경우 그 이상은 추상적이고 유토피아적으로 묘사되어 왔다. 플라톤이 구상했던 공화국이나 동양 사람들이 그리워해 온 요순시대나, 오늘날 민주정치가 추구하는 자유와 평등이 보장된 평화로운 인류공영의 사회나, 공산주의자들이 목적하는 프로렐타리아의 왕국 등은 정치의 신화적인 목적의 여러 모습들이다. 정치는 이러한 인류의 이상을 향한 여러 가지 방향으로부터의 노력들 중의 하나의 중요한 수단이라 하겠다. 경우에 따라서 때로는 가르치고, 때로는 다스리고, 때로는 싸우지만, 그 모든 정치행위의 궁극목적은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가장 좋은 사회를 만드는 일인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을 향한 노력일 때에 정치는 옳은 것(正)이 된다. 논어(論語)에서 정자정야(政者正也)라 한 것은 그대로 정치의 기준을 제시한 것이라고 보겠다. 따라서 가장 좋은 정치가 어떤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기는 곤란할 것 같다. 서양사람들은 그것을 법과 질서에의 정의의 실현으로, 가장 적게 다스리는 정치(the least govern is the best govern)로 묘사했지만, 동양 사람들은 그런 묘사조차 거부했다. 노자의 도덕경(社会道德經)에서는 가장 좋은 정치란 국민들이 그것이 있다는 사실만 알 뿐, 정치를 의식하지 않는 정치로 묘사되어 있다(太升降知有之)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러한 정치를 찾아보기는 아마 거의 불가능한 일이런지도 모른다. 우리가 역사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거의 모든 정치는 인간의 이상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정치가 아니라 정치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여 인간을 수단화하려는 정치가 대부분이다. 정치가 수단 아닌 목적으로 될 때에 정치는 체제를 구축하게 되는 것 같다. 일단 체제화된 정치는 사상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의 세계 속에서 그 자체가 하나의 절대가치가 된다, 도덕경에 의하면 그것을 국민들이 기꺼이 받아들일 적에는 국민들은 그 정치를 좋아하고 칭찬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두려워하고, 더 나빠지면 경멸하여 업신여기고, 결국은 불신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정치가 체제화되려 할 때 의례 먼저 손대는 것이 교육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