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그것만이 내 세상
[매일일보 최재원 기자] 1999년부터 약 10년 동안 한 아이를 위탁 보육했다. 자폐 아이고 아들과 동갑내기였다. 먼저 아이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 데리고 오기 전 가족회의를 하게 됐는데 아이가 남자애라서 딸이 반대했다. 그러나 하루 지난 뒤 딸은 “데리고 와. 잘 봐 줄 수는 없지만 노력 할 게”라며 허락했다. 잘 키울 자신은 없었지만 정성을 다할 것을 가족끼리 합의하고 데리고 왔다.
9살인 아들은 나이가 같은 이 아이를 동생처럼 꼭 손잡고 다녔고 친구 집에 갈 때도 데리고 다녔다. 걸어서 3~40분 되는 장애인 복지관을 데리고 다니며 일주일에 1000원 받는 적은 용돈으로 과자를 같이 사먹으면서 다녔다. 누나가 있는 막내인 데도 이 때 만큼은 의젓한 형이 었다. 뭔가 조금이라도 묻으면 아들은 저는 고사하고 언제나 아이를 깨끗이 닦였다.
아들과 아이는 싸우기도 많이 했다. 다 좋은데 아들은 음식에 욕심이 많았기에 고기반찬과 햄, 소시지는 서로 먹으려고 젓가락을 가지고 다퉜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 성가대를 하는 엄마 대신 온종일 아들 녀석이 데리고 다니는데, 예배시간 도중 아이가 강단에 있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망가뜨리는 일이 있었다. 어디선가 아들이 뛰어나와 뒤통수를 한 대 때리고 손잡고 나가는 그 모습에 모두들 한바탕 웃음바다가 됐다.
함께 사는 동안 딸과 아들은 장애인을 대하는 교육을 스스로 익혔다. 아이와는 아무렇지도 않게 먹고 마시고 뒹굴면서 함께 자랐다. 티 없이 맑고 고운 천사 같은 아이 덕이었다.
서번트 증후군. 자폐아에게 특별한 재능인데, 상대성 원리를 발견한 알버트 아인슈타인, 전기를 발명한 토마스 에디슨도 서번트 증후군이라 한다. 아이는 특별한 재능은 없었으나 책 읽는 것을 좋아했고 숫자를 잘 썼다. 지하철 1호선에서 5호선의 역 이름을 완벽하게 외우기도 했다. 물론 계산은 하지 못했다.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나오는 ‘진태’는 음악의 천재성을 보이는데 한 번도 교육받아 본 적이 없는 피아노를 한번 듣는 것만으로 완벽하게 칠 수 있다. 절대 음감이다. 그 세계만이 진태의 놀이이고 세상이다. 피아노를 치고 연주할 때 진태는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하고 즐거운 모습을 하니 천사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친구 부부의 사이에 껴서 함께 보게 된 영화였다. 친구도 남편도 중간중간 눈물을 씻고 있었다. 특수학교에서 초‧중‧고를 학교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직장을 다니는지라 시간 맞춰서 태우고 기다리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하교 시간에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빙빙 도는 학교 버스와 연락을 하면서 데리고 와야 하는 번거로움 있었지만, 그때 ‘나를 비우고 낮추는 법’을 배웠다. 어떠한 환경 에서 든 이겨낼 수 있을 것.
영화를 보면서 극중 서번트 장애인 진태를 보는 내내 아이 생각에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눈물을 흘렸다. 선하고 예쁜 천사 같은 아이, 그저 웃기만 하던 아이. 지금 31살이 됐을 그 아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고 보고 싶다. 함께 있을 때 더 사랑해주지 못하고 잘해주지 못한 것이 영화를 보는 동안 후회를 불러 일으켰다.
김복녀 시인‧수필가(한국문인협회 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