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중고차 대기업 진출 지연, 소비자는 외면 당하고 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

2022-07-04     기고
[매일일보] 지난 3월 자동차 전문 시민단체들이 ‘중고차 시장 전면 개방’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시민단체들은 중고차 시장의 비대칭적인 구조와 불투명성으로 인해 오랜 기간 불법행위가 만연해 왔으며, 이는 고스란히 소비자의 피해로 귀결되기 때문에 중고차 시장의 전면 개방과 혁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는 중고차판매업의 생계형 업종 지정 여부를 두고 적합성을 심사하고 있다. 이와 관련 2019년 말 동반성장위원회에서는 미지정할 것을 추천했고, 지난 국감에서는 박영선 전 중기부 장관이 생계형 업종으로 부적합하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현재는 중기부 심사를 거쳐 을지로위원회에서 실무위원회를 운영 중이다. 을지로위원회는 중기부, 국토교통부, 전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한국수입자동차협회, 현대자동차, 케이카 등과 함께 상생방안을 논의 중이나 소비자의 권익은 증발한 지 오래고, 본인들 이권 다툼에만 열중하고 있다. 우리나라 중고차 산업은 미국, 유럽 등 해외에 비해 뒤처져 있다. 산업 경쟁력 측면에서는 더욱 미흡하다. 우리나라 중고차 수요가 신차의 1.2배 수준에 정체돼 있는 반면, 미국, 유럽 등 선진시장은 중고차 수요가 신차의 2배 수준이다. 산업의 내적 경쟁력을 살펴보면 오히려 외형보다도 차이가 더욱 크다. ‘자동차 자판기’로 인지도를 얻은 미국의 카바나(Carvana)는 온라인 중고차 판매를 비즈니스모델로 삼은 스타트업이다. 카바나는 구매 후 7일간 전액 환불을 보장해주고, 사고, 수리, 소유자 변경기록부터 미세한 흠집도 판별할 수 있는 고해상도 이미지까지 제공한다. 온라인 판매에 따른 편의성에 더해 소비자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어낸 비결이다. 주가가 2017년 IPO 대비 9배 상승하는 등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카맥스(Carmax)는 미국 최대 중고차 유통 전문업체다. ‘중고차 정찰제’를 도입해 온라인 중고차 시장을 크게 확장했다. 구매자가 판매원과의 가격협상 단계에서 피로도가 매우 높아지는 것에 착안, 정찰제 도입을 통해 신뢰를 얻는 방식으로 고객에게 어필했다. 이밖에 독일의 클루노(Cluno), 영국의 드로버(Drover)는 고품질의 인증 중고차로 구독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스타트업으로 중고차와 모빌리티 서비스의 연결을 시도하고 있다. 이렇게 해외 시장의 중고차 산업은 유통‧판매 채널 혁신, AR‧VR 기술, 빅데이터, 모빌리티 서비스 등 다양한 형태의 미래산업으로 확장돼 가고 있다. 고객에게 기본적인 신뢰도 얻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 중고차 산업의 모습과 매우 대조적이다. 현재 중고차 단체는 완성차제조사가 기존 판매업자의 생존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며 시장 진출을 전면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물론, 중고차 시장 개방에 대한 기존 업계의 입장도 이해는 된다. 대기업들이 시장에 진출한다고 하니 우려와 거부감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중고차판매업이 생계형 업종으로서 적합하지 않고, 무엇보다 장기간 누적된 피해로 인해 소비자의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린 상황에서는 현실을 직시하고 시장을 혁신해야만 한다.  중고차단체는 중기부, 국토부 등 정부 유관부처의 도움을 통해 제조사가 사업영역을 준수하도록 하고, 나아가 중고차 시장이 선진화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생존을 위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