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차세대 시스템’의 종말

최종욱 마크애니 대표이사

2021-07-07     강소슬 기자
최종욱

[매일일보] 모바일, 로봇 드바이저, 챗봇, 빅데이터, 블록체인, 메타버스 등 끝없이 밀려드는 IT 기술 발전과 시장의 변화로 금융권과 공공기관의 오래된 관행인 ‘차세대 시스템’이 종말을 고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차세대 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온 ‘고객서비스 전면 개편 시스템’은 그동안 한국사회 혁신을 떠받혀온 제방 역할을 해왔지만, 장마처럼 다가오는 IT업계 변화로 아랫마을 전체를 붕괴시킬 수 있는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다.

새로운 IT기술을 기존 금융환경에 접목하기 위해 금융권 차세대 시스템 구축은 5년에서 7년 주기로 진행된다. ‘전면적인 수정’작업만 2년에서 3년에 걸쳐, 시장과 고객분석 및 기본 설계, 개발과 구축, 테스트 및 수정을 거치는 등 IT시스템을 통째로 갈아엎는다. 

예비 사업에만 500억원에서 1000억원 정도가 소요되고, 본 사업은 2000억원에서 3000억원 안팎이 들어가는 빅뱅 작업이다. 시장의 IT 인력들을 한꺼번에 빨아들이는 블랙홀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각 은행이나 보험업계, 카드사는 스스로 차세대 시스템의 구축 시기를 조절해야 할 정도의 대규모 사업이다. 

IT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삼성생명이 3000억원 안팎의 금융ERP 구축, 교보생명 2000억원 안팎 투자, 한화생명 2500억원 안팎 차세대 개발, 우정사업본부 차세대 시스템이 2000억원 안팎의 투자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가 수주에 의존하던 위탁 중심 시스템 구축이 게임업체발 IT인력 연봉 상승 때문에 더는 지탱하기 어렵게 되며 이제는 종말을 고할 때가 됐다.

일단 차세대 시스템이 5년에서 7년 주기로 진행되는 만큼, 시대에 뒤떨어진 ‘구시대 시스템 구축’으로 전락하고 있다. 금융권이 아무리 보수적인 집단이라고 하더라도 5년에서 7년에 걸쳐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수정하는 것은 빠르게 변하고 있는 시장과 고객의 변화를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금융업, 배달업, 숙박업, 교육사업 등은 모두 ‘업의 본질’이 IT서비스업으로 바뀌고 있다. 금융업은 더는 고객의 돈을 맡아 두었다가 필요할 경우 내어주는 금고업이나 돈을 빌려주는 대부업이 아니다. 

업의 본질이 고객의 니즈를 선제적으로 찾아내고, 이를 해결해 주는 ‘고객 서비스’로 변화했다. 인터넷에서 물품을 팔고 있는 아마존이 이제는 예측 배송을 하는 시대인만큼, 고객의 돈이 어디서 흘러드는지, 어디에 주로 쓰는지, 얼마나 자주 돈을 빌리는지, 이자는 제대로 내는지에 대한 고객 행태를 파악하고,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업인 것이다.

지난해 차세대 시스템을 완성한 업체들이 이제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흐름을 반영하기까지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할까? 기존의 차세대 시스템으로는 고객의 바뀐 행태와 기기의 변화, 소프트웨어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반영할 수 없다. 구세대 시스템으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IT가 본업이 아니라는 안일한 생각은 결국 대부분의 금융업 시스템을 외주에 의존하게 만들고, 결론적으로는 금융업 자체의 경쟁력을 갉아먹게 된다. 

2020년 한국은행이 펴낸 ‘금융정보화 현황’에 의하면 2019년 151개에 달하는 금융기관(국내은행, 금융투자, 보험회사, 신용카드)의 전체 임직원 수는 22만8767명이고, 이중 IT인력은 9880명으로 전체 인력의 4.3%에 불과하다. 

작은 규모의 업체를 뺀다고 해도 151개 기관에 1만명 안팎의 IT인력을 고용하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대부분 금융기관이 시스템 개발과 운영을 외주업체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므로 가능해진 일이다. 

이처럼 IT시스템을 몇 년에 한 번씩 갈아엎는 차세대 시스템과 외주업체에 의존하다 보니 점포 없이 은행업을 영위하는 케이뱅크, 카카오뱅크, 토스와 같은 인터넷, 모바일 은행의 등장으로 금융업은 점포영업에 발목이 잡혀 고사할 위험에 놓이게 되었다. 

외주에 의존하다 보니 고객 대응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기도 어렵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상장 직전인 카카오뱅크의 시가총액이 20조에서 40조로 추정되고 있는데, 오래된 KB은행의 시가총액은 7월 초 현재 22조 부근에 맴돌고 있다. 

본업인 IT서비스를 외주 업체들에 의존하고 있는 금융권의 안이한 대응은 최근 게임업계에서 촉발된 연봉 인상 러시로 더는 버틸 수 없게 됐다. 

한동안 금융권의 연봉은 다른 분야보다 1.5배가량 높았다. 그러한 연봉 체계는 하청, 재하청의 낮은 급여와 밤샘 작업 덕분에 가능했다. 그러나 IT인력을 무섭게 빨아들이고 있는 인터넷, 모바일 은행, 투자사, 플랫폼 기업들이 오히려 현재보다 1.5배 높은 연봉과 스톡옵션까지 제시하고 있어 금융권을 맴도는 하청업체들의 붕괴가 예고된다.

누가 뭐라고 해도 대한민국의 중공업화는 박정희 대통령이, IT 선진화는 김대중 대통령이 이끌어온 공적으로 기억될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이 앞장서서 이끌어온 ‘IT 대한민국’은 이처럼 곪아 터지고 있는 차세대 시스템으로 공공서비스를 무너뜨리게 될 것이다. 

한 때 UN 산하 192개국 전자정부평가에서 6년 연속 1위를 차지하며, 기염을 토했던 공공서비스 영역이 금융권 다음으로 무너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공공서비스 IT시스템 역시 차세대 시스템으로 5년 단위로 개편되고,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과 공공서비스 분야에서 하청과 재하청, 낮은 연봉 체계로 근근이 연명하고 있던 외주업체들이 게임업체발 임금인상으로 전면붕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또한, 실력 있는 개발자들이 블랙홀처럼 IT서비스업과 인터넷은행, 모바일 뱅킹, 배달업 등으로 옮겨가고 있는 상황에서 실력 없는 기술자들만 남아서 질 높은 공공서비스가 가능할까? 우리 사회 전역에서 기본의 탄탄한 IT 인프라 제방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