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소장, 앞으로 ‘삼성공화국’
대신 ‘이건희 왕국’ 표현 사용하겠다

2006-08-26     나정영 기자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이 대통령의 ‘부적절한 발언에 대해 ’이건희 왕국‘은 과거가 아닌 현재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김상조 소장은 작년 초 이래 참여연대는 삼성그룹의 문제, 특히 민주질서와 시장질서를 유린하는 문제를 지적하면서 ‘삼성공화국’이란 표현을 일관되게 사용했다고 밝혔다. 김 소장은 경제칼럼을 통해 “솔직히 고백하건대, 심사숙고한 용어 선택은 아니었다“며 ”다만 이제 한국경제의 핵심 문제는 30대 재벌이 아니라 삼성임을 강조하기 위해 과거부터 사용해오던 ‘재벌공화국’이라는 표현을 ‘삼성공화국’으로 바꾼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는 ‘삼성공화국’ 대신 ‘이건희 왕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겠다”며 이는 “일체의 감시와 비판을 거부하는 절대화된 권력, 더구나 그 절대권력을 아들에게 세습하는 체제를 표현하는 데는 당연히 ‘왕국’이 더 적확한 용어일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특히 김 소장은 “얼마 전 대통령이 X파일 문제의 본질은 ‘도청’이지 그 안에 담긴 ‘정경유착’이 아니다라는 발언을 했을 때 놀라 자빠질 뻔 했다”며 “그래도 이 때까지는 대통령이 변호사 출신이기 때문에 일반인의 상식적인 법감정과는 다를 수도 있겠구나” “그래도 정경유착 부분을 수사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겠지라고 애써(!) 이해하려고 했다”고 칼럼을 썼다.

다음 김상조 소장 칼럼 내용을 요약한다.

“97년 대선 후보들을 대선자금 문제로 다시 수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대통령의 명시적인 발언을 들었을 때는 그냥 주저앉고 말았다.

여기에는 오해의 여지도 왜곡의 여지도 없다. 이건 삼성을 수사하지 말라는 대통령의 수사지휘일 뿐이다. 더군다나 법무부장관의 불합리한(!) 수사지휘는 거부하겠다고 일침을 놓았던 검찰총장도 대통령의 불법적인(!) 수사지휘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그러면 대통령의 수사불가 지침의 수혜자는 누구인가? 김대중, 이회창 후보? 대통령의 명시적인 발언에는 두 대선 후보만 언급되었다. 그러나 수사불가 지침의 최대 수혜자가 이건희 회장이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X파일 문제에서 대통령은 누구와 소통하고 있는가? 대통령의 발언은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 ‘국민’이라고 강변하지 말기 바란다. 해석 권한은 듣는 사람에게 있다. 이런 해석이 오해고 왜곡이라고 항변하고자 한다면,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돈 받은 사람은 수사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단 한차례도 수사다운 수사를 받지 않은 바로 그 돈 준 사람은 수사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다시 한번 ‘불법적’ 수사지휘를 하여야 한다. 물론 이게 말도 안되는 논리고, 대통령이 그렇게 말할 리도 없다는 것 역시 삼척동자도 안다.

대통령은 대선자금 수사불가 지침의 근거를 설명하면서, “직접적 피해자가 있지 않은 정경유착 등 포괄적 문제는 구조적 요인을 밝혀 역사의 교훈으로 삼고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

10가지만 딱 조사해서 1천가지의 구조를 다 이해할 수 있으면 그 수준에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 발언에는 심각한 문제들이 산재해 있다.

무엇보다 먼저, 대통령은 정경유착의 문제를, 아니 ‘이건희 왕국’의 문제를 과거의 일로 치부하고 있다. 과연 그런가? 아니다.

97년 X파일은 ‘이건희 왕국’의 창건을 알리는 징조일 뿐이다. 2005년 ‘이건희 왕국’은 8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고해졌다. 그런데 어찌 ‘이건희 왕국’이 역사의 교훈으로 삼고 넘어갈 일인가?

둘째, 대통령은 ‘이건희 왕국’의 구조를 다 이해했는가? 다 이해했으면 어찌 참여정부의 재벌개혁정책이 그 모양 그 꼴인가? 역으로, ‘이건희 왕국’의 힘이 너무나 강대하다는 것을 다 이해했기 때문에, 굴종하기로 마음을 바꾼 것인가?

셋째, ‘이건희 왕국’의 직접적 피해자가 눈에 안보이는가? 이건희라는 절대권력자 앞에 무릎 꿇은 정치인, 법조인, 관료, 언론인, 학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아준 중소기업인과 노동자와 서민이 대통령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가?

그 절대권력 앞에 신음하는 한국의 민주질서와 시장질서가 대통령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가? 이건희 회장 일가와 삼성기업을 구분하지 못하는, 아니 그 구분을 애써 외면하는 대통령 스스로가 직접적 피해자 아닌가?

“3,700만 CDMA 사용자 중에서 도청의 잠재적 피해자는 1,000명뿐인데, 그게 뭐가 문제냐”고 했던 진대제 정통부 장관의 실언을 거꾸로 읽어보면 오히려 진실의 한 부분이 드러날 지도 모르겠다. 도청 테이프를 계기로 대선자금을 수사하면 곤란을 겪을 사람은 이건희 회장을 포함한 기득권자 1,000명뿐이지만, 그걸 수사하지 않고 ‘이건희 왕국’을 용인하면 앞으로 쭉 곤란을 겪을 사람은 5천만 대한민국 국민이다.

1,000명의 기득권자는 대통령에 너무 가까이 있어서 금방 눈에 보일지 모르겠으나, 진정한 직접적 피해자는 바로 5천만 불특정 다수의 대한민국 국민이고, 그 피해는 더욱더 커져 가고 있다.

최근 대통령은 사회적 합의와 노사정 대타협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서구의 경험을 볼 때, 사회적 합의와 노사정 대타협은 지배자(강자)가 위기감을 느끼고 자신의 기득권을 양보할 때 성립되었다.

이미 무지무지 양보하고 있는 피지배자(약자)가 더 양보해서 이루어지는 타협은 타협이 아니다. 그러면 우리 사회에서 기득권을 양보를 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노동자? 서민? 중소기업? 아니다.

‘이건희 왕국’의 군주인 이건희 회장 일가와 그 주변에 있는 1,000명의 기득권자들이다. 그러면, 대통령의 수사불가 지침을 듣고 안도할 이건희 회장과 그 주변의 기득권자들이 무엇을 양보하겠는가? 그들의 위기감은 이미 사라져버리지 않았는가? 그들은 대통령조차 ‘이건희 왕국’의 이익에 충실히 복무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지 않았는가? 기득권을 양보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대통령이 진정 사회적 합의와 노사정 대타협을 이루고자 한다면, 이건희 회장을 수사하도록 해야 한다.

아니 수사불가 지침을 내리는 것과 같은 엉터리 발언은 최소한 하지 말아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건희 왕국’의 일등공신으로 역사에 기록되지 않으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