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객관적이고 진실된 교육의 본질을 찾아라

심의보 충북교육학회장

2022-08-03     김광호 기자
[매일일보] 세종시교육청은 지난 2월 새학기 학교 민주시민교육 활성화를 목적으로 관내 99개 초.중.고에 ‘촛불혁명’이라는 도서를 배포하여 교원단체, 시민단체, 학부모로부터 강한 지적을 받았다. 세종시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는 교육감의 정치적 중립성 위반 행위라는 시민들의 항의전화로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고 한다. 도서명 ‘촛불혁명’은 비영리사회단체 나눔문화에서 관내 학교에 기증한 것으로, 2016년 10월부터 2017년 5월까지 촛불집회 현장을 사진과 함께 기록한 내용이다.  해당 도서에는 ‘박원순 전 시장은 광장을 지켜준 사람, 서울시장만큼은 제대로 뽑자’ 등 표현이 있어 정치적 편향성 우려를 낳고 있다.  세종시교육청은 “특정 정권을 홍보할 의도는 전혀 없다.”고 설명하지만, 교육청이 공문서를 통해 일방의 시선이 담긴 도서를 배포하는 것은 의도가 무엇이든 정당화될 수 없을 것이다. 현대 역사에서 나타나는 강력한 정치체제들은 조직화된 대중의 세력을 바탕으로 삼고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통례인 것 같다. 오르테가 가제(J. Ortega Y. Gassert)나 베르자에프(N. Berdyaev) 등이 이미 선언한 바대로 현대는 대중의 시대다. 역사상 어느 시대도 현대처럼 대중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활약한 시대는 없었던 것 같다. 현대의 대중들은 매스컴에 의해 그들의 가치와 사고와 행동을 공유한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새로 등장하는 정치체제마다 제일 먼저 보급하는 것이 매스컴이었다. 그리하여 정신적으로 귀족적이고 개인적인 창조적 천재들에 의해서 문화가 풍요하게 자랄 수 있었던 시대, 스펭글러(Spengler)가 “거장들의 시대”라고 불렀던 문화의 쳥년기는 끝나버리고, TV나 휴대폰 같은 문명의 이기(秘诀)에 의해 상품화되는 야비한 속물 취향의 대중문화가 전염병처럼 만연된다. 베르자에프의 ‘현대 세계의 인간 운명’에 의하면, 대중의 시대에서 지도자란 대중의 집단적 심리에 의해서 날조된 허상일지도 모른다. ‘지도자’라고 하며 대중을 지배하고 있지만, 사실은 반대로 대중에 의해서 완전히 지배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선동에 의해서 대중을 이끌지만, 일단 그 선동이 대중으로부터 버림받게 될 때 권력을 잃고 쫓겨나게 된다. 지도자의 권위는 집단이 가진 특이한 심리나 감정, 본능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 권위야말로 대중의 비합리적 잠재의식을 기준으로 한다. 이 비합리의 권위가 국가계획으로 인간의 사유나 양심, 심지어는 개인의 성생활에 이르기까지 강제한다. 이런 비합리성으로 이루어진 권위가 인간생활을 강제하기 위해서는 매스컴에 의해 조작되고 교육에 의해 개조된 대중의 가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한 수단으로 가장 잘 활용되는 것이 교육이다. 대중은 그 사회의 체제가 교육해서 만들어낸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 가치는 대중적이 아닌 모든 것을 파괴하려 한다. 개인은 대중에 의해, 천재는 평범한 기준에 의해, 질은 양으로 말미암아 비난을 받게 된다.  오르테가에 따르면 대중은 그들과 다른 특출한 것을 두려워하고 미워한다. 개성적인 것을 모조리 파괴하지 않으면 불안해 견디지 못한다. 따라서 대중의 가치란 언제나 획일적이다. 비록 그 가치가 ‘자유’라고 해도 대중적 가치로서의 ‘자유’란 ‘자유’에 반대할 ‘자유’는 용납하지 않는 획일적 ‘자유’일 뿐이다. 인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인간에 대한 획일적 가치의 적용은 결국 전체주의를 만드는 첩경이 된다. 이러한 징조가 제일 먼저 나타나는 곳이 교육이다. 모든 전체주의 국가들에서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탈진실이란 진실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 확증편향에만 매몰돼 자신의 잣대로만 세상을 재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정치·사회적 사건은 단순하게 선과 악의 대결구도로 진행되지 않는다. 어느 쪽이든 일부 맞는 구석이 있고, 편의적 해석에 따라 그럴싸하게 들린다. 그렇기에 실체적 진실을 좇기보다는 자신이 응원했던 사람의 주장이 맞을 것이라고 믿는다. 보수든 진보든 진영을 좇는다. 진영주의가 머릿속에 박히면, 편에 따라 정의와 부정의가 나뉜다. 실체를 보지 않고 사람을 본다. 탈진실의 시대에서 보다 객관적이고 진실된 교육의 본질을 찾는 것은 한국교육의 최대의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