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김아라 기자] 해운업계가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규모 과징금 조치 예고에 심란하기 그지없다. 10여년간 장기불황 끝에 최근 기사회생하는 분위기에서 수천억원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받으면 생존이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지난 5월 불거졌다. 공정위는 국내 12개 해운사와 해외 11개 선사가 한국~동남아 항로에서 운임 담합 행위를 했다며 5000억~60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겠다는 심사보고서를 업계에 발송했다. 과징금 규모는 지난 15년간 항로 관련 매출액의 8.5~10% 수준이다. 공정위는 오는 9월 전원회의 심의에서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과징금 폭탄을 맞게 될 해운업계로서는 날벼락이 따로 없다. 국내 해운사들은 해운법이 규정하는 적법한 과정을 거쳤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해운법 29조에 따르면 외항화물운송사업자는 다른 외항화물운송사업자와 운임·선박배치, 화물의 적재, 그 밖의 운송조건에 관한 계약이나 공동행위를 할 수 있다. 특히 공동행위는 국제적으로 아주 오래전부터 용인돼 왔고 공정거래법에서도 예외라고 해운사들은 강조하고 있다.
해운사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것은 생존의 문제와도 직결돼서다. 2017년 한진해운 파산 이후 나락으로 떨어진 해운업계는 최근 간신히 활력을 되찾아가는 중이다. 그런 마당에 난데없는 과징금 폭탄은 해운산업을 다시 한번 죽이는 행위나 다름없다. 게다가 동남아 노선의 경우 대형 선사가 아닌 중소형 선사가 대부분이라 줄도산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과징금 마련을 위해 선박을 처분할 땐 선원들의 고용불안 또한 가중되는 등 악순환을 낳는다.
이에 해운사들은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하면 소송전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다. 정치권에서도 해운업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28일 부산을 찾아 “우리나라는 수출입 화물의 99.7%가 선박으로 운송되며 해운산업은 단순한 산업이 아닌 국가전략 산업”이라고 언급했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도 “운임 동맹은 외국 선사들도 하는 일”이라며 “해운업의 특수성을 고려한 대안이 있는지 관계자들과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위성곤 민주당 의원은 해운업계의 입장을 반영해 공정위가 해운법에 따른 담합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해운법에 따라 규율한다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 공정위는 공정거래법만 내세우며 과징금 부과 방침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해운업 특수성을 고려해도 이미 법에서 허용하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다만 구체적인 액수가 바뀔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해운업계로서는 공정위 제재를 받는 것 자체만으로도 많은 것을 잃는 것이나 다름없다. 오히려 현 상황에서는 정부가 국적 선사들에 임시 선박 투입을 늘리도록 유도하고 재정도 지원할 때가 아닌가 싶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안되려면, 공정위는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 상황과 국익을 고려해 판단해야 할 것이다. 해운법 보완 역시 업계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