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중재가 없는 언론중재법 개정 진정한 중재가 필요하다

2021-08-12     박근종 칼럼니스트
박근종
[매일일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지난 7월 27일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를 열어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이른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표결 처리한 데 이어 지난 8월 10일 2주 만에 열린 문체위 전체회의에서 치열한 공방 끝에 의사진행 발언만 5시간 진행하다 법안 심의는 손도 못 대고 끝남으로써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언론의 ‘자유’와 ‘책임’이라는 양극단의 견해가 정면충돌함으로써 정치권의 뇌관으로 급부상한 가운데, 언론중재법 개정을 ‘언론개혁의 디딤돌’이라며 밀어붙이려는 여당과 ‘언론 재갈 물리기’라며 반대하는 야당의 양극적 찬반 논쟁과 극단적 대립이 치킨게임(chicken game)을 하듯 첨예하게 격화하고, 언론 단체들은 연일 반대 성명을 내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어 정국이 급냉(急冷)하고 있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포털사이트를 통한 뉴스 소비가 대세가 되었다. 언론의 콘텐츠가 스마트폰 등 새로운 플랫폼으로 유통되기 시작하면서 시간과 장소를 초월한 IT기술 기반 ‘쌍방향 방송’과 함께 ‘1인 방송’시대가 새롭게 열리고 각종 행사장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을 실시간 생중계로 나서는 유튜버들의 주장과 입김이 기성 매체를 뒤흔드는 ‘왝더독(Wag the Dog) 현상’을 낳는 등 전통 미디어시장 변화의 빅뱅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따라 신문 구독률과 방송 시청률이 급격히 하락함으로써 ‘매체산업’은 사양길이라는 치명적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0 언론수용자 조사’에서 보듯 무려 80% 이상이 스마트폰·태블릿 PC로 뉴스를 보고 있고, 종이신문으로 뉴스를 본 경우는 겨우 10.2%에 불과했다. 모바일이라는 플랫폼을 이용한 포털 중심의 뉴스 시스템으로 뉴스 환경이 급격한 지각변동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듯 언론의 주요 수입원이었던 광고 수입은 줄어들 수밖에 없고, 포탈의 생리상 클릭(click) 수에 따라 수익이 결정되는 구조로 급변하다 보니, 안타깝게도 언론의 공정성보다는 기사의 조회 수가 더 큰 영향력과 지배력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이를 만회하기 위해 선정적인 기사로 클릭(click) 수 경쟁을 벌이느라 ‘저널리즘’으로서 신뢰도 스스로 갉아먹게 되었고, 이는 악순환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복합적 위기상황에 봉착한 언론의 현주소다. 이는 어떻게 보면 ‘올드미디어’의 내재적 숙명의 한계가 아닐 수 없다. 

2000년 6월 석유의 황재로 불리던 사우디아라비아 전 석유장관 ‘셰이크 아흐메드 자키 야마니(Sheikh Ahmed Zaki Yamani)’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고유가정책을 비판하며 영국의 ‘텔레그래프’와 가진 인터뷰에서 남긴 “석기시대가 돌이 부족해서 끝난 것이 아니듯, 석유 시대도 석유가 고갈돼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명언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신문시장의 위기도 종이가 모자라서 빚어진 쇠락이 아니라 인터넷 등 신기술 기반의 뉴미디어 시대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 위기의 본질이 아닌가 싶다. 급기야는 지상파 방송국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방송 미디어들은 더는 매스미디어(Mass media)의 확고한 중심이 아니고, 유튜브에서 제기되는 주장이 전통 미디어를 넘어 정치 사회적 담론을 주도하는 형국이 되면서 덩달아 가짜뉴스(Fake News)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되었다. 유튜브 광고는 유튜버가 동영상 선전이나 중간에 광고를 노출하겠다고 선택하면 광고 시청 수에 따라 광고비가 지급되는 구조로 인하여 조회 수를 늘리기 위하여 가짜뉴스를 더욱 확대 재생산하고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그에 따른 가짜뉴스 피해가 속출하고 있어 이를 근절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나온 듯하다.  흥미롭게도 미국의 저널리스트 맷 타이비(Matt Taibbi)는 ‘HATE Inc. 우리는 증오를 팝니다’라는 저서에서 과거 언론이 객관성이나 중립성을 주된 덕목으로 내세웠던 것 역시 광고 시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며, 오늘날 광고가 줄어들자 언론이 꺼내든 새로운 상술이 정파성이라고 주장하며, 뉴스는 공익성을 담은 정보가 아니라 선택적 분노를 효과적으로 일으키는 증오를 상업화한 유해 상품이라고 말하고, 언론은 수익성을 위해 저널리즘을 포기한 채 증오를 부추기도록 정교하게 고안된 뉴스를 양산한다고 주장해 이를 방증하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시행한 ‘2020년 언론수용자 조사’ 중 ‘한국 언론의 가장 큰 문제점 조사’ 결과, 1위는 ‘허위·조작정보(가짜뉴스)’로 24.6%를 기록하였고, 2위는 ‘편파적 기사’로 22.3%를 차지하였으며, 3위는 속칭 ‘찌라시 정보’로 15.9%를 나타내 허위정보나 조작정보 폐해에 대한 국민적 문제 인식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최근 2년간 언론 관련 손해배상 인용 사건의 손해배상액 산정 경향도 약 60%는 인용액이 500만 원 이하에 불과한 법원의 소극적 판결 등으로, 결국 ‘허위·조작정보(가짜뉴스)’를 막기 어렵다는 지적이 계속되었으며, 더하여 언론사가 가짜뉴스를 생산 및 유포하는 행위에는 사회·경제적 이익 추구가 큰 동기 중 하나이므로, ‘허위·조작정보(가짜뉴스)’로 취득한 이익을 박탈한다면 효과적인 예방이 될 것이라는 기대에서 허위·조작정보의 보도에 따른 손해의 배상책임을 강화하여 가짜뉴스와 왜곡보도로 인한 국민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허위·조작보도에 대한 피해구제의 실효성을 제고시키려는 데서 언론 중재법 개정은 출발하고 있다. 지난 7월 27일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에서는 그동안 제출된 언론중재법 개정안 16건을 병합한 위원회의 대안을 표결에 부쳐 「국회법」 제51조에 따른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대안으로 의결했는데, 언론이 타인의 인격권을 침해한 경우 법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그 피해를 신속하게 구제해야 한다는 취지로 이전보다 손해배상과 정정보도 수준을 한층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논란의 핵심은 대한민국 역사에 유례가 없는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도입을 두고 언론 보도에 대한 실질적 피해 구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법 취지에도 불구하고, 한쪽에서는 “가짜뉴스로 인한 국민의 피해를 구제하고 공정한 언론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언론개혁의 첫걸음”이라 주장하는 데 반해, 다른 한쪽에서는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봉쇄법이라며, 권력 있는 사람과 돈 있는 사람들로부터 협박을 받게 될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우선, 찬성론자들은 있는 사실을 팩트(fact) 그대로 보지 않고 일면만을 과도하게 부각(浮刻)하거나 핵심을 벗어나는 여론의 왜곡과 호도는 갈수록 심각성을 더하고 있고, 심지어는 사실 확인도 않은 채 해당 기사를 그대로 베껴서 내보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으며, 여기에 더해 언론 보도가 인터넷 환경으로 흡수되면서 자극적인 제목과 부정확한 기사가 무분별하게 살포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클릭 수에 따라 돈이 되는 구조가 일반화되다 보니 공정과 사실 보도는 설 자리를 잃고 잘못된 정보로 본의 아니게 손해를 입게 되는 사례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비뚤어지고 왜곡된 언론 현실을 바로잡고 막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일 뿐만 아니라 언론 대항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평범한 일반 국민을 위한 개혁 입법이라는 이유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찬성한다. 한편, 반대론자들은 개정안의 입법 취지를 이해한다 해도 그에 걸맞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고 한다. ‘허위‧조작 보도’라는 개념이 명확하지 않을뿐더러 ‘중과실 추정’이나 ‘법률 위반에 정당한 사유’ 등은 자의적이고 모호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법률은 객관성과 구체성이 핵심인데, 개정안은 주관적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많아 결국 소송 남발로 이어져 언론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고, 불법 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과 관련해 피해자가 고의·과실을 입증하는 것이 원칙(「민법」 제750조)인데도 입증할 책임을 언론사에 두고 있고, 고위 공직자나 대기업이‘전략적 봉쇄소송’으로 이어져 언론의 비판 기능을 무력화하는 수단으로 악용할 소지가 크다는 이유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반대한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뷰’가 올해 4월 27일부터 30일까지 나흘간 실시한 조사결과, ‘허위·조작 가짜 뉴스’를 보도한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찬성한다.’라는 응답이 80%에 달했고 반대한다는 응답은 13%였다. 찬성이 6배 높았고 무응답은 7%였다. 또한, YTN ‘더뉴스’의 의뢰로 올해 7월 30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실시한 조사결과 언론 대상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해 56.5%가 찬성했고, 35.5%가 반대했다. 이렇듯 국민 여론은 찬성 쪽에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다수결 원리를 수용한 것은 그것이 무조건 옳고 좋아서인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 더 나은 방법이 없어서인 ‘방법의 하나일 뿐’으로 다수결의 정당성에 대한 한계론을 들고 다수의 뜻을 앞세운 소수 의견 억압은 민주주의란 이름의 ‘폭정’(알렉시스 드 토크빌)이라고 일갈(一喝)한다.   앞으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국회 본회의 표결 순으로 법안 통과의 향방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이 문제를 정쟁으로 끌고 가려는 의도가 숨어있다면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정치권뿐 아니라 우리 사회 여러 분야에서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무조건 관철’이나 ‘무조건 저지’의 입장에서 대립과 갈등의 자세나 반목과 질시의 태도로 정략적으로 접근하려는 전략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야말로 중재가 없는 언론중재법 개정에 진정한 중재가 필요하다.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를 없애는 동시에 언론의 책임성을 높일 수 있는 균형점을 찾는 냉철한 지혜와 변화된 언론 환경에 적합한 개혁방안을 도출하는 냉정한 용단이 절실히 요구된다.  따라서 오직 국민만을 중심에 두고 판단하고 애오라지 국민만을 위하여 결정해야 한다. 정치권이 좀 더 머리를 맞대고 언론계와 시민사회의 의견을 수렴하고 공감대를 넓혀 법안의 추상성을 걷어 내고 구체성과 완성도를 높이려는 성숙한 입법문화를 정착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피해자 구제와 정당한 이익 보장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 법안 자체의 필요성과 개정의 당위성 그리고 현실 적합성과 실현 가능성을 따지고 묻는 게 온당한 입법 자세이자 개정 취지의 핵심에 접근하는 첩경이기 때문이다. 바라옵건대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국민의 가슴을 멍들게 하는 가짜뉴스를 근절함으로써 건전한 언론문화 창달과 올바른 국민의 알 권리 충족 및 언론의 사회적 책임 실현을 위한 현명한 결과가 도출되었으면 한다.   박근종 칼럼니스트(現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