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해 5월 28일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0.5%로 낮췄던 기준금리를 무려 15개월만인 올해 8월 26일 0.25%포인트 올려 0.75%가 되었다. 그동안의 사상 초저금리 시대가 끝나고 금리 상승기로 접어들었다는 신호가 아닐 수 없다. 그동안 누적된 금융 불균형을 완화해야 한다는 절실한 필요성 부각과 급증한 가계부채와 함께 오를 대로 오른 부동산 가격과 주가를 연착륙시키기 위한 특단의 금리 인상조치로 아시아 국가 가운데서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최초로 이뤄진 기준금리 인상이다.
더구나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저축은행·카드사 등 여신전문금융사와 보험사, 지역농협, 신협, 새마을금고 등 2금융권의 2분기 가계대출 잔액은 535조 4,765억 원에 이른다. 2분기 기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7.9%(39조 615억 원)나 급증했다. 최근 들어 은행권이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을 억제하는 등 전방위로 가계대출 옥죄기에 나서면서 신용이 낮은 수요자들이 2금융권으로 몰린 결과로 이른바 ‘풍선효과’가 나타난 셈이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취약차주는 금리 상승 시기에 연체율이 2.0%나 오르는 등 변동성이 크게 나타난 데 반해 비(非)취약차주는 0.0%로 거의 영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렇듯 금리 인상 효과는 통상 일반 대출자보다 다중 채무자나 저소득층·저신용자 같은 이른바 취약차주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2금융권 대출은 연 10%를 웃도는 고금리이기 때문에, 취약계층의 이자 부담은 더욱더 가중되는 것이다. 자칫 가계부채는 줄지도 않으면서 외려 연체 증가 등으로 빚의 질만 나빠질 우려가 더 커졌다.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이 대출자 연봉 이상의 신용대출을 받을 수 없도록 신용대출 규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이미 NH농협은행과 KEB하나은행은 규제를 적용하고 있으며, 나머지 우리은행·KB국민은행·신한은행도 조만간 대출 한도를 강화할 전망인 데다, 인터넷은행인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 역시 같은 대출 규제를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한도를 줄이라고 압박한 데 따른 불가피한 조치다.
여기에다 설상가상으로 금융위원회는 가계부채 안정을 위해 개인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조기에 앞당겨 시행하고, 2금융권 DSR 규제 강화도 검토하기로 했다. 이 DSR 규제는 소득이 적을수록 대출 한도가 줄어드는 구조다. 따라서 소득이 적은 취약계층에게 ‘대출 절벽’의 부담만 가혹할 정도로 집중되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금융당국이 초저금리 시대를 틈타 당장 필요치 않은 대출까지 미리 받아두거나, 마이너스통장을 개설하는 사람이 많아질 정도로 가격 상승을 기대하고 ‘영끌’이나 ‘빚투’에 뛰어드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현실을 직시하고, 금리를 전격 인상한 것은 이해되지만, 이자 부담 가중은 민생경제와 일자리에 당장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한국은행이 지난 8월 24일 발표한 ‘2분기 가계신용(잠정)’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805조9000억 원 규모로, 이 가운데 카드 사용액(판매신용) 100조6000억 원을 제외한 가계대출만 1705조3000억 원에 이른다. 아울러 지난 6월 기준으로 예금은행 가계대출 전체 잔액 가운데 72.7%가 변동금리 대출로 조사됐다.
은행 외 금융기관의 변동금리 비중도 같다고 가정하면, 산술적으로 대출 금리가 기준금리 인상 폭 0.25%포인트만큼만 올라도 대출자의 이자 부담은 3조1000억 원(1천705조3000억 원 × 72.7% × 0.25% = 3조988억3750만 원)이나 불어나는 셈이다. 정부의 영업 제한으로 직원을 내보내고 대출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어렵고 힘든 자영업자들에게 있어서 이자 부담 증가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지난 7월 은행권의 신규 가계 대출 금리는 연 2.99%였는데 반해 2금융권은 연 13.5%에 달했다. 은행 대출에서 배제된 취약계층이 무려 5배 가까운 이자를 더 내야 할 처지에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영세 자영업자나 소상공인 등 저신용 수요자들이 이런 고금리를 버텨내기는 쉽지 않다. 연체와 개인 파산이 급증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저소득층의 자금 수요는 대부분 생활자금이자 생계자금이다. 2금융권 대출자 3명 중 2명은 여러 곳에서 어렵게 돈을 빌린 다중 채무자들이라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생계가 어려운 서민들이 카드빚을 내고 저축은행과 보험사를 전전긍긍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2금융권에도 신용대출을 연소득 이내로 제한하도록 요청한 상태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2금융권 대출마저 막히면 불법 사채 시장으로 내몰릴 수밖에는 다른 대안이 없는 딱한 실정이다. 은행에서 2금융권으로, 다시 불법 사채 시장으로 밀려나고 또 이어지는 ‘연쇄 풍선효과’가 악순환되는 최악의 상황이 우려되는 것이다.
사정이 이럴 진데 은행은 일괄적인 대출 총량 규제에 나섰고, 서민들의 전세자금 대출마저 축소돼 버렸다. 금융당국은 오히려 이런 대출 규제를 독려하고 있는 현실이다. 금리 인상의 효과를 높이면서 서민경제에 미칠 충격을 완화하고 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국내외 경제 상황에 맞춰 금리인상속도를 조절하고 동시에 기업들의 옥석 가리기와 불필요한 유동성을 늘릴 재정지출을 줄이면서 어려운 자영업자들에게 지원을 집중하는 등 금융당국과 은행의 치밀한 정책 공조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청된다.
무엇보다도 대출 창구에서 서민 실수요자가 소외되지 않도록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지원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무작정 가계대출 총량 규제에만 집중하다가 부채의 양과 질 모두가 다 나빠지게 만드는 치둔(癡鈍)의 우(愚)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각별 유념하고 대책 강구에 정부와 금융당국의 모든 역량을 집주(集注)하여야 한다. 그야말로 실수요자가 어려움과 고통을 겪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하는 정책을 펼 것을 강력히 촉구하며, 금리 인상 등 대내외 여건변화에 신축적이고 탄력적으로 유연하게 선제적으로 대응할 대출 특별전략을 마련하는 고도의 정책 역량이 필요하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現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