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119구급차는 길 위에 멈출 수 없다

2021-09-29     박요순 소방공무원
박요순
[매일일보] 만일 우리에게도 서양의 ‘아스클레피오스’와 같은 ‘의술·의학의 신’이라는 것이 있다면 환자의 응급처치와 병원 이송을 담당하는 119구급대는 그 신의 손과 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119구급차는 그 신이 신는 신발쯤 될까.  그런데 이 세상 어떤 차 보다도 나은 성능을 가져야 하는 119구급차의 노후도 수준이 걱정스럽다. 올해 7월 1일 기준으로 전국의 소방 119구급차는 모두 1,700대가 있는데 이 중에서 ‘내용연수’를 초과한 비율이 주행거리를 기준으로 36%(618대)나 된다. 다시 말해 전국의 구급차 10대 중 3.6대는 정상 사용 연수를 넘겨 노후화가 의심된다고 하겠다.  시도별로 보면 대구와 충청남도 구급차의 54%가 내용연수를 넘겨 노후화가 가장 심하며 경기도가 51%, 세종시 45% 순이다. 28대의 119구급차를 운용하고 있는 인천의 경우 평균 사용 연수가 2년 4개월, 노후화율 2.3%로 가장 젋다.  119구급차는 관련 법률(소방장비관리법)에 따라 내용연수가 5년 또는 12만km로 정해져 있는데 이는 사용 기간이 5년을 지났거나 5년을 넘지 않았더라도 운행 거리가 12만km를 넘으면 내용연수를 넘은 것으로 보아 불용 처분의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기한이 지나면 불용 처분을 할 수 있다는 것이지 반드시 불용의 의무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차량의 상태를 따져서 사용 가능 판정을 받아 계속 사용할 수도 있다. 이때 예산 사정이 크게 좌우하는데 119구급차는 보통 지방비 50%에다 국비(응급의료기금) 50%를 덧붙여 구매하므로 각 시도별 예산 투입에 따라 위에서 보는 것과 같이 구급차 노후도에 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구급차의 ‘내용연수’가 5년, 12만km라고 하면 언뜻 굉장히 빨리 불용 처분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일반 승용 차량의 1년 평균 주행거리가 1.4만km 정도인데 비해 119구급차는 2.4만km 정도 된다. 특히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 지역은 더 심한데 서울시 구급차의 1년 평균 주행거리는 3.9만km이고 경기도는 5.2만km나 된다. 경기도의 경우 구급차를 2년 남짓 운행하면 벌써 내용연수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구급차는 흔히 차량 수명에 치명적이라고 하는 급가속, 급정거를 반복하기 때문에 같은 운행 거리의 일반 차량과 비교했을 때 노후 속도도 훨씬 빨라진다.  이렇게 혹사에 가깝게 구급차를 운행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고장이 잦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구급차는 내용연수가 다 되어 갈 때쯤이면 한 달에도 몇 번이나 고장을 일으킨다. 더욱이 출동 자체에 어려움을 주는 시동 불량, 시동 꺼짐, 엔진 출력 저하 등의 문제가 많이 생기는데 정비업소에서도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해 출동 중 멈추어 서는 경우가 잦다. 각 시도 소방본부의 공개 자료를 보면 실제로 올해 상반기에만 전국의 구급차가 출동 중 고장 나 대체 구급차를 투입한 사례가 경기도 118건(타이어 펑크 포함), 전남 23건(타이어 펑크 포함), 경북 7건(타이어 펑크 제외, 이하 같음), 충북 5건, 대전 3건 등이다. 전국적으로는 올 상반기에 170건(타이어 펑크 포함) 이상의 출동 중 고장 사례가 있었다. 이러한 구급차 고장도 환자 이송을 마치고 원래의 보금자리로 복귀할 때 발생하면 그나마 낫지만 가장 운이 안좋은 것은 병원 이송 중에 멈춰버리는 것이다(이는 심정지 환자, 중증외상환자 등에게는 치명적 결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 ‘운’은 이상하게도 오로지 응급환자가 짊어져야 하는 몫의 짐인데 내용연수가 지나도 예산이 지원되지 않으면 신규 차량으로 교체할 수 없기에 정비 불량 등의 차량 관리상 잘못이 아닌 이상 출동 중 고장이 나도 담당 공무원에게 책임을 물을 수가 없다. 평상시 자기관리를 잘하는 사람도 길 가다가 갑자기 심장 마비로 쓰러지는 경우가 있듯이 나이 들어 아픈 데가 생기는 것은 자연의 이치인 까닭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나이 탓, 운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개선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일단 구급차의 내용연수를 기존의 5년-12만km에서 4년-10만km로 20% 정도 줄일 필요가 있다. 또한 겉보기에 멀쩡하다 하더라도 내용연수 도달 차량은 선제적 예방 차원에서 불용 처분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 이때 폐기하기에는 성능이 아까우면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해외공적개발원조(ODA) 사업으로 저개발국가에 무상 지원하던가 국내 시장에 중고차로 파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렌터카도 사용자 만족을 위해 비교적 최상의 성능을 유지한 채로 중고차 시장에 나온다.) 또한 경기도와 전남의 사례에서 보듯이 타이어 펑크로 인한 노상 운행 중지 사례가 많은 만큼 구급차의 타이어 교체 시기를 현재의 ‘파손, 균열, 트임 발생 시 교환’이라는 모호한 기준(소방자동차 관리 매뉴얼)에서 일정 주행거리 또는 ‘트레드(타이어 홈)’의 깊이 기준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소방 당국에서 119구급차의 노상 고장 발생 건수를 통계 항목으로 관리(현재는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하여 차량 노후도와의 상관관계를 분석하고 구급차의 출동 중 고장 발생을 줄이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1분 1초가 급한 응급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하는 구급차는 항상 최고 성능을 유지해야 한다. 이는 예방정비만으로는 달성하기 힘든 목표다. 전장의 군인이 대부분 청년이듯이 구급차도 항상 청년인 것이 좋다. 구급차의 내용연수와 주행거리 한도를 줄여서 각종 성인병이 발생하기 전에 구급차로서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다. 인구 감소로 나라의 앞날이 걱정되는 요즈음 새 생명을 얻으려는 노력에 앞서서 먼저 있는 생명을 잘 지킬 필요가 있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대한 투자는 버려지는 것이 아니다. 최상의 성능의 구급차로 건강과 생명을 되찾은 응급환자는 사회로 돌아가 차량 가격의 몇백 배를 뛰어넘는 부가가치를 되돌려 준다.  119구급차는 단순한 차량이 아니라 국민 생명 보호를 위한 제1선의 의료 장비로 보아야 한다. 응급실의 의료 장비가 자주 고장이 나면 환자가 그 병원을 신뢰하기 어렵다. 달리는 응급실인 119구급차는 절대로 길 위에 고장으로 멈춰서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 기획재정부, 소방청, 지자체(소방본부)는 관련 예산을 집중하여 전국 구급차 노후화율을 낮추어 주기를 바란다. 국민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박요순 소방공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