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공공기관에 꼭 있어야 하는 ‘국어책임관’을 아시나요?

최갑용 전 춘천시 행정 국장·행정학 석사

2022-10-11     황경근 기자
최갑용
[매일일보] 해외연수에 올랐던 2019년 10월 기내에서 영화 ‘말모이’를 봤다.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 사건을 주제로 한 우리말 독립운동을 그린 영화였다. 우리말을 지키기 위한 선조의 숭고한 노력이 생생하게 전해져 애국심이 일렁이던 기억이 있다. 한글의 위상은 세계적 수준이다. 그러나 세종대왕이 만들고 조선어학회가 지키려 했던 한글의 참된 가치를 소홀히 여기는 현 세태가 안타깝다. 외계어, 은어, 비속어, 외국어·외래어 등의 범람이 우리글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무엇보다 외국어·외래어 남용은 거리 간판, 기업명, 아파트 이름, 화장품 등 민간부문만 아니라, 우리말을 보호하고 장려해야 할 국가나 자치단체 등 공공기관도 기관의 명칭이나 정책명, 제도, 축제 등에 마구 쓰기는 매한가지다. ‘라운드 테이블, 어바웃타임, 일당백 리턴즈’이는 모 지자체의 사업계획서에 등장하는 용어들이다. 얼마나 많은 주민이 알아들을까? 물론 세계화와 언어 환경 변화에 따라 전문용어나 전 세계 공용어는 사용할 수 있다. 문제는 정도가 지나치다는 점이다. 한 누리 꾼은 "이것이 언어 사대주의 현상 아니냐"며 "외국어로 표기되면 세련되고 고급스럽다는 고정관념이 만연한 것 같아 씁쓸하다"고 꼬집었다. 또, 언제부터인지 관공서, 은행, 식당 등에 가면 헷갈리는 화법을 쉽게 들을 수 있다. “이쪽으로 오실게요” “신청서 작성하실 게요” 등이다. ‘~~할게요’라는 표현은 말하는 이(話者-1인칭)가 본인의 의지를 나타낼 때 쓰는 말이다. 따라서 듣는 이(聽者-2인칭) 입장에선 혼란스럽다. “이쪽으로 오세요” “신청서 작성해 주세요” 등 청유형으로 말해야 한다. 다른 예로 ‘되다(하다)’의 활용형으로 ‘되어(하여)’와 ‘돼서(해서)’ 등이 있다. 몇 년 전부터 이것이‘~~되어서’ ‘~~하여서’라고 말하는 경향이 생겼으니, 이것도 우리말이 변질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같이 우리글과 말이 훼손되고 있는 것은 국가나 자치단체가 그 책무를 이행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 국어기본법 제10조 제1항에 따르면 ‘공공기관 등의 장은 국어의 발전 및 보전을 위한 업무를 총괄하는 국어책임관을 지정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국어책임관’을 두지 않는 곳이 태반이다. 영어가 틀리면 부끄러워하면서 한글이 틀리면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는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국가 및 자치단체는 ‘국어기본법’을 철저하게 지켜서 “만시지탄이지만 잘했다”라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가장 소중한 문화유산은 ‘한글’인 것을 10월 문화의 달을 맞아 다시금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