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盧 국가장이 남긴 것
2021-10-31 송병형 기자
지난 주 노태우 전 대통령의 국가장 문제를 두고 논란이 많았다. 그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신군부 쿠데타의 주역 중 한 명이자 5.18 학살의 책임자 중 한 명이다. 민주주의 모범국가로 평가받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인물을 국가장으로 예우한다는 자체가 논란을 자초하는 일이다.
물론 그의 공(功)을 폄하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는 ‘위대한 보통사람의 시대를 열겠다’는 기치를 내걸고 당선된 뒤 실제 이에 걸맞는 사회적, 경제적 변화를 단행했다. 1기 신도시 건설과 함께 토지 공개념을 도입했고, 고속성장 속에서 최저임금제를 도입하는 등 성장과 분배의 조화에도 힘썼다. 또 80년대 말 공산권 붕괴라는 국제질서 격변기에 북방 외교로 한국의 활동무대를 획기적으로 확장했고, 88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했으며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도 이뤄냈다.
권위주의 청산도 그의 재임 중 시작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민주정의당 대선 후보 시절 ‘6.29 선언’으로 민주화 요구를 수용했고, 재임 중에는 ‘물태우’라는 비아냥도 감수하면서 권위주의 통치와 거리를 두려는 모습을 보였다. 전두환 신군부 쿠데타 정권에서 단 5년 만에 김영삼 문민정부로 평화적인 정권 이양이 가능했던 것도 그의 역할을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만약 과도기의 시대적 변화에 순응하려 하지 않았다면 한국의 민주화는 보다 큰 대가를 치러야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공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신군부 쿠데타로 한국의 역사발전을 막은 점, 특히 권력을 잡기 위해 무고한 시민을 학살한 과오는 너무나 크다. 여당 대선후보의 말처럼 결코 빛의 크기가 그늘을 덮지 못할 정도다.
그래서 그의 국가장을 납득하려면 공과 과를 따지는 것으론 부족하다.
그의 영결식에서 김부겸 총리도 이 점을 지적했다. 당시 김 총리는 “오늘 우리는 노 전 대통령님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르고 있다”며 “재임 시에 보여주신 많은 공적보다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고인께서 유언을 통해 국민들께 과거의 잘못에 대한 사죄와 용서의 뜻을 밝힌 것”이라고 했다. 다수의 국민들이 김 총리의 이 발언에 공감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의 국가장을 다르게 바라보는 이도 존재했다.
노태우 정부 말기 총리를 지낸 노재봉 전 총리는 영결식장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영단으로 1951년에 4년제 정규육군사관학교가 출범했다. 정규 육사 1기 졸업생이 바로 각하와 그 동료들이었다”며 “이들은 목숨을 담보로 투철한 군인정신과 국방의식을 익혔을 뿐 아니라 국민의 문맹률이 거의 80%에 해당하던 한국 사회에서 최초로 현대 문명을 경험하고 한국에 접목시킨 엘리트들”이라고 평가했다.
노 전 총리는 이어 “이들이 보기엔 한국 정치는 국방의식이 전혀 없는 난장판으로 인식됐다”며 군사 쿠데타를 통한 이들의 정권 장악을 “1기생 장교들의 숙명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을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결국 노 전 대통령 국가장은 우리에게 또 다른 씁쓸함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