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조선업계, 탄소중립 과속에 경쟁력 타격 불가피
조선산업 불황 때의 선박 건조량 기준으로 온실가스 감축목표 설정돼 부담
업종 특성상 수주·인도 시간 길고 밸류체인 복잡해 디지털전환 추진 어려워
자본·기술 부족으로 대·중소형 조선사 간 격차 커질 우려…인력난도 시급해
2021-11-03 김아라 기자
[매일일보 김아라 기자] 최근 수주량 급증으로 호황기를 누리고 있는 한국 조선업계가 친환경 선박 강화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조선업 현실을 무시한 너무 높은 정부 탄소중립 목표치에 업계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3일 정부·업계 등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정상회의 기조연설에서 “2030년 2018년 대비 40% 이상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종전 목표보다 14% 상향한 과감한 목표다.
이에 친환경 선박의 발주 비중은 올해 32%에서 오는 2030년 59%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는 국제해사기구(IMO) 환경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LNG(액화천연가스)추진선 등 저탄소 선박 건조를 확대해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20척 발주에 그쳤던 LNG선은 올해 46척이 발주됐다.
더 나아가, LNG추진선 등 저탄소 선박 위주에서 암모니아·메탄올·수소 등 무탄소 선박 시장으로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해상 환경규제를 충족하지 못한 선박은 운항에 제약을 받아 해운시장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삼성중공업은 영국 선급 로이드로부터 업계 최초 ‘멤브레인형 액화수소 저장탱크 및 16만㎥ 액화수소운반선 개념설계’에 관한 기본인증을 획득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암모니아수 흡수제를 활용해 선반 운항 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저장하는 검증에 성공했다. 한국조선해양은 업계 처음 세계 최대 해운사인 머스크와 1만6000TEU급 메탄올 추진 초대형 컨테이너선 8척을 건조 계약하기도 했다.
하지만 업계는 IMO, 주요 선진국보다 크게 높은 정부 목표치에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본부장은 “조선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선박 건조량과 비례하는 구조”라며 “불황으로 건조량이 대폭 줄어든 시기를 기준으로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설정되면 조선업계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조선산업은 업종 특성상 디지털전환과 탄소중립 추진에 어려운 면이 있다. 조선산업은 수주부터 인도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밸류체인이 복잡하다. 외부변화 수용에 보수적이라 디지털전환 추진이 다소 늦는 편인 것이다. 실제로 다른 업종에 비해 디지털전환을 비교적 빨리 시작했지만 그 성과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딜로이트컨설팅에 따르면 조선산업이 디지털전환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기간은 평균 3.4년으로 타 산업(평균 3.1년)보다 길지만, 디지털 성숙도에 대한 평가는 10점 중 4.5점으로 산업 평균(5.1)에 못 미친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가운데 자본과 기술에 따라 대형-중·소형 조선사 간 차이가 더욱 벌어지게 되면 생산 감소, 매출 감소 등으로 조선업 경쟁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최근 급증한 수주량으로 인해 예상되는 인력난과 근로시간 부족 문제를 해소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조선소에서 사람을 구하려고 해도 2015년부터 이어진 장기 불황으로 조선업 전반에 대한 인식이 악화됐고 열악한 처우에 아예 업종을 전환한 사람이 많다.
이병철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상근부회장은 “미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스마트십 데이터 플랫폼 개발에 민관 협력을 강화하고, 온실가스 배출규제도 합리적으로 운용해야 한다”며 “조선산업 회복기에 원만히 대응하도록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 등의 개선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석인 산업기술대 교수는 “한국 조선산업이 글로벌 선두자리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한발 앞선 산업구조 전환과 미래기술 확보가 절실하다”면서 “현재 각국에서 개발 중인 수소연료전지 추진선의 경우 IMO가 정하는 표준이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정부가 수소연료 추진선의 글로벌 표준 논의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