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의료 사각지대로 내몰린 농촌, 기다릴 여유가 없다

2021-11-08     농협창녕교육원 임규현 교수
농협창녕교육원
[매일일보]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헌법 제36조에는 이른바 국민보건권이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농촌 주민들에게 이 조항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줄 의료시설과 의료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부의 ‘2020년도 국토모니터링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응급의료시설의 평균 접근성은 지역별로 큰 차이가 난다. 서울 시민은 거주지에서 2.9km를 이동하면 응급의료시설을 이용할 수 있어 접근성이 높다. 그러나 지방으로 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강원도민의 경우 22.3km를 가야 응급의료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서울과 무려 20km 정도 차이가 난다. 경북도 20.25km로 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분초를 다투는 응급환자의 특성상 농어촌에 거주하는 환자들은 제대로 된 치료 한번 받지 못하고 소중한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농촌 내 의료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보건복지부의 2018년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에는 농촌지역에서 근무하는 의사와 간호사의 비율은 전체의 10.5%와 8.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촌지역 의료 환경이 열악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문제의 심각성은 시간이 지나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농촌은 도시보다 고령인구 비중이 높아 의료 수요가 더 많지만 읍 지역을 벗어나기만 해도 의원급 병원조차 찾기 어렵고, 의사들도 농촌에 오기를 꺼려한다. 농촌이 대도시에 비해 의료·복지 서비스가 열악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돈이 되는 곳에 사람과 투자가 몰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료서비스는 의사와 환자사이의 의료정보의 비대칭성과 누가 언제 어떻게 환자가 될지 모르는 의료수요의 불확실성, 의사만이 의료시술행위를 할 수 있는 의료공급의 독점성 때문에 시장에 완전히 맡겨놓을 수 없고, 공공의 규제가 필요한 부분이다. 특히 농촌의료 공백문제를 시장의 수요공급 원리로만 풀려고 하면 의료 공백을 넘어 ‘의료 진공’상태로 악화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사람이 돌아오는 농촌’은 구호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의료·복지·교육·교통 등의 인프라가 갖춰질 때 비로소 탄력을 받는다. 열악한 농촌 의료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와 정치권, 의료계, 유관기관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의료소외 계층을 약자로 여기고 동병상련의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열악한 농촌의료 상황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약자에 대한 관대함과 일체감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농촌의 의료 공백 해소를 위해 모두 출발점에 다시 서야 한다.   농협창녕교육원 임규현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