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노태우완 다르다' 이재명, 조문 일축...윤석열, 조문 의사 철회
헌정사 유린 광주 학살에 반성 없어
여권 "조화, 조문, 국가장 모두 불가"
2022-11-23 김정인 기자
[매일일보 김정인 조민교 기자] 신군부 쿠데타로 대통령직에 올랐던 전두환씨가 23일 향년 90세로 사망했다. 지난달 26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지 거의 한달 만이다. 대한민국 헌정사를 유린했던 신군부 쌍두마차가 모두 세상을 떠난 것이다. 같은 쿠데타의 주역이지만 사후 두 사람은 전혀 다른 평가를 받고 있다. 유족을 통해 자신의 과오를 반성한 노 전 대통령은 공과를 함께 평가받아 국가장을 치렀지만, 끝내 사죄 없이 떠난 전씨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엄혹한 평가를 받고 있다. 국가장은 물론이고 조문조차 보이콧하는 정서가 팽배한 상황이다.
❚여권 "국가장 불가" 이재명 "조문 안해"
노 전 대통령의 국가장을 수용했던 여권은 이날 전씨의 사망 소식에 '국가장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그의 사망소식에 끝까지 자신의 죄의 용서를 구하지 못한 어리석음에 분노와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며 "아주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5.18의 진실을 밝히고 진심으로 사죄하길 간절히 바랬다. 민주주의를 지켜낸 5월 영령들을 위해, 그 민주주의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우리들을 위해 반드시 짚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 간절함마저도 이제는 이룰 수 없게 되었다"고 말했다.
송 대표는 이어 "그의 생물학적 수명이 다하여 형법적 공소시효는 종료되었지만 민사적 소송과 역사적 단죄와 진상규명은 계속 될 것"이라며 "전씨의 사망에 대하여 민주당은 조화, 조문, 국가장 모두 불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이에 대한 정의를 세우는 길은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재명 당 대선후보도 전씨 사망 소식을 접하고 기자들에게 "전씨는 명백하게 확인된 것처럼 내란 학살 사건 주범"이라며 "수백 명, 최하 수백 명의 사람을 살상했던, 자신의 사적 욕망을 위해서 국가 권력을 찬탈했던 이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에 대해서 마지막 순간까지도 국민께 반성하고 사과하지 않았다. 이 중대 범죄 행위를 인정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이 후보는 이어 '조문을 갈 것이냐'는 질문에 "현재 상태로는 조문 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아직도 여전히 미완 상태인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의 진상이 드러날 수 있도록 당시 사건 관련자들의 양심 선언을 기대한다"고 했다.
❚윤석열 "조문가야"에서 "안하기로 결정"
보수야권에서도 노 전 대통령 별세 때와는 다른 분위기가 역력했다. 하지만 과거 '3당 합당' 등 신군부와 연결된 역사 때문인지 한계를 노출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저는 전 전 대통령 상가에 따로 조문할 계획이 없다"면서도 "당을 대표해서 조화는 보내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내 구성원들은 고인과의 인연이나 개인적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조문여부를 결정하셔도 된다"고 했다.
또 김기현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 이후 기자들과 만나 "(전 전 대통령은) 많은 국민적 비난을 받았던 엄청난 사건의 주역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 점에 대한 책임이 막중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안타까운 일이다. (전 전 대통령은) 한국사의 한 싫든 좋든 많은 여러 가지 논란을 벌였던 분이고 한국사의 한 장면을 기록했던 분"이라고 했다. 그는 당 지도부와 전 전 대통령의 조문에 갈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다른 분들 이야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며 "저는 개인적으로 조문하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경선 과정에서 '전두환 옹호 발언' 논란과 연 이은 '개 사과' 논란으로 홍역을 치른 윤석열 당 대선후보는 이번에도 논란을 불렀다. 그는 대선 경선 예비후보들과의 오찬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전씨의 사망에 대해 "삼가 조의를 표하고 유족에게 위로말씀을 드린다"며 "(조문은) 준비일정을 보고 전직 대통령이니 가야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윤 후보는 또 '전씨가 5·18 관련 별다른 사과도 하지 않고 세상을 떴다'는 질문에 "돌아가셨고 상중이니까 정치적인 얘기를 그분하고 관련 지어서 얘기하는 건 시의적절하지 않은 거 같다"고 답했다. 국가장 여부에 대해선 "정부가 유족 뜻과 국민 정서 등 고려해서 종합적으로 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윤 후보는 그러나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이후 이양수 선대위 수석대변인을 통해 "조문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조문 의사를 철회했다.
❚끝내 반성 없었던 정치군인의 삶
이처럼 보수야권이 조문조차 꺼릴 만큼 전씨는 차가운 평가를 받고 있다. 앞서 지난달 노 전 대통령 별세 당시에도 국민의힘 이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은 전 전 대통령 일가와 달리 평가될 부분이 있다"며 전씨를 냉정히 평가한 바 있다.
1931년 경남 합천군에서 태어난 전씨는 대구공고를 졸업한 뒤 1951년 육사에 입학, 군문에 들어선 뒤 중앙정보부 인사과장, 제1공수특전단 부단장 등 출세 가도를 달렸고, 군부 사조직인 '하나회' 창설 멤버로서 박정희 정권에서 군부 엘리트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다 박 전 대통령 서거 후 '하나회'를 기반으로 12.12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이 된 인물이다. 그는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 진압한 뒤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해 11대 대통령이 됐고, 이어 1981년 7년 단임 대통령제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헌법을 통과시키며 제5공화국 시대를 열었다.
전씨의 재임 동안 이뤄진 철권통치로 시민들은 결국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으로 맞섰고,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이뤄냈다. 퇴임 후에도 거액의 비자금과 "전재산 29만원" "광주는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 등의 발언으로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의 과오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외신도 "독재자" "학살자" 평가
세계 주요 언론도 이날 전씨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독재자' '학살자' 등의 평가를 내놨다. AP통신은 이날 "1969년 쿠데타로 집권하고 민주화 시위를 잔혹하게 진압했으며 악행으로 감옥에 갔던 군사 독재자 전두환이 9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도 전씨에 대해 “군부 독재자"라며 "전씨가 집권했던 8년은 잔혹성과 정치적 탄압이 특징"이라고 했다. 또 "전씨는 군 사령관이었던 1980년 광주 민주화 시위 학살을 주도했고, 이 범죄로 추후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재판 당시 정치적 위기에서 국가를 구하기 위해 쿠데타가 필요했다고 주장했고, 광주에 군대를 보냈다는 사실을 부인했다"고 했다.
AFP통신 역시 "반대파를 잔혹하게 탄압하다 대규모 민주화 시위에 의해 쫓겨났으며 군에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을 명령함으로써 '광주의 학살자'라는 오명을 얻었다"고 평가했다.